아프다
서철수
아프다
갈비뼈를 다 드러낸 것처럼 매우 아프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모래를 한 움큼 집어먹은 것처럼
핏덩이를 한 움큼 토하는 것처럼
많이 아프다.
비를 앞세워 비겁한 걸음을 했던 계절이
이제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석양이 깊게 들어오는 뜰에
실루엣만 남기고 있는 감나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빗소리
이 숨 가쁜 계절에
아프다
-전문-
▶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찾다(부분)_황정산/ 시인 · 문학평론가
시인은 제목까지 해서 "아프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그만큼 고통이 가슴 깊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의 아픔은 늦가을에 "실루엣만 남기고 있는 감나무"라는 다른 존재로 인해서이다. 시인은 "갈비뼈를 다 드러낸 것처럼" 서 있는 감나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고통처럼 그것의 아픔을 느끼고 있다. 그것도 "모래를 한 움큼" 삼키고 "핏덩이를 한 움큼 토하는 것처럼" 아주 심하게 통증을 느끼고 있다. 시인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정서를 말할 수 있을 때, 다른 존재들이 비로소 자기와 똑같은 존재의 무게로 다가옴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의 또 한편에서는 전쟁과 기아 또는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애써 무시하거나 잊으려 한다. 나와 함께 사는 존재들을 지울 때 사실은 우리 자신의 존재도 축소되고 지워진다. 결국, 나를 찾는 길은 나와 같은 존재들을 되살리는 일이고 그들의 고통까지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서철수 시인의 노력은 가시밭길 같은 고통의 길이기도 하다. 이 길 위에 서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서철수 시인을 응원한다. (p. 시 191/ 론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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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봄(93)호 <신작소시집/신작시/ 작품론> 에서
* 서철수/ 1999년 『시와 비평』으로 등단, 시집『바람이 건네준 말』/ 초대 한국문협 영월지부장 등
* 황정산/ 1993년『창작과비평』으로 평론 활동 시작, 2002년 정신과표현』으로 시 발표, 저서『주변에서 글쓰기』『쉽게 쓴 문학의 이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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