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성희_미니멀라이프, 버리고 갈 것만 남은···(부분)/ 참새들의 수다 : 이길원

검지 정숙자 2024. 5. 10. 12:48

 

    참새들의 수다

 

     이길원

 

 

  방앗간 뒤적이는 참새들 

  뒤로 하고 전깃줄에 오른다

  하나둘 모이는 참새 친구들

  - 아침 햇살이 따뜻하지?

  - 햇살 먹은 저 구름 좀 봐

  - 영롱한 저 빛깔

  - 어젯밤 별빛으로 시 한 수 옮겼지

  서로 어깨 비비며 펼치는 수다

  날갯죽지 퍼덕이며

  배고픔도 잊은 듯 키득거린다

  소소한 행복

 

  무리 중 한 마리

  푸드덕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또 한 마리

  뒤따라 사라진다

  다른 한 마리 몸을 들썩인다

  - 어디 가려고?

  - 저 안개 속. 천국인가 봐

  - 먼저 간 친구들이 안 돌아오는 걸 보면

  - 모두 가면 어쩐다니

  - 누가 내 수다 들어 주니

  친구 잃은 참새 몇 마리

  허전이 남아 지저거린다* 

     -전문-

 

   * 지저거린다: 소리내어 자꾸 울며 지저귄다

   * 블로그註: 끝 행의 '허전'는 저자의 말씀에 따라 원본 대로 수록했습니다 

  

  ▶ 미니멀 라이프, 버리고 갈 것만 남은 삶의 가벼움(부분)_김성희/ 시인

  맑은 아침에 모여든 작고 작은 참새 무리, 이 '참새들'은 시인의 유년 시절부터 함께 세월을 보내온 친구들 모습을 빗댄 것이다. 서로의 인생사를 즐겁게 떠들며 또 즐겁게 들어주던 친구들이 어느새 하나, 둘, 사라지는 노년기의 외로움과 상실감은 편하지 않은 소재이다. 그러니 시인은 그 불편한 진실을 오히려 수다를 떨다가 안개 너머로 사라지는 참새에 비유해서 마치 한 편의 동시같이 보여준다. 존재의 늙음과 그 존재들의 긴 이야기를 어느 맑은 아침의 작은 참새들의 수다로 표현하니 더 애잔한 마음이 든다. 의지하던 친구들이 사라지는 어두운 이야기를 동시의 맑은 느낌으로 갈아입힌 시인의 채치가 참으로 놀랍다. 시의 직접적인 표현과 비유적인 표현으로 직조한 시 한 편에서 시 읽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p. 시 226/ 론 20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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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4-봄(93)호 <poetic focus/신작시/ 작품론> 에서

 * 이길원/ 1944년 충북 청주 출생, 1991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하회탈 자화상』『은행 몇 알에 대한 명상』『계란껍질에 앉아서』『어느 아침 나무가 되어』『헤이리 시편』『노을』『감옥의 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다』『복수초』, 초보자를 위한 시 창작 Digest『시 쓰기의 실제와 이론』, 영역시집『Poems of Lee Gil-Won』『Sunset glow』『Mask』『The Prison Door can dnly be Opened from outside』, 불역시집『La riviere du crepuscule』, 헝가리역시집『Napfenypalast』

 * 김성희/ 2015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나는 자주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