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그리다 1
문영하
아버지는 새해 첫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75세, 2002년의 화두; '올해는 버리는 해'
"기쁨도 슬픔도 다 버리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응시한다"
아버지, 서울로 향한다는 연락이다. 한사코 큰 병원을 거절하시더니
이제 때가 되어 자식 곁에서 문을 닫겠다고 결심한 모양.
"일흔다섯이 넘으면 여럿에게 폐를 끼친다." 늘 말씀하시더니
일흔다섯 5월, 영면에 드셨다
마당에 있던 매화가 가지를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등불을 켜 놓고 책상 앞에서 꽃 피우기에 골똘하셨다.
새벽 내내 꽃의 향기를 모으던
아버지 다정한 꽃으로 원고지에 촘촘히 앉으시더니
내 몸 어딘가 숨었다가
해마다 봄이면 환한 꽃으로 건너오신다
-전문(p.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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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봄(93)호 <신작시 Ⅱ> 에서
* 문영하/ 2015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청동거울 』『오래된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소리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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