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서양원
말기암 투병 중의 아내가
간호 끝에 지쳐 새우잠을 자고 있는 내 등을 쓰다듬는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수만 가지 감정이
등 뒤부터 혈관을 타고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긴 세월의 강을 함께 건너온
그녀의 푸른 성정이 아프게 돋아난다
미안함과 고마움과
안타까움의 슬픈 연주
이승과 저승의 벼랑길에 서서 보내는
그녀의 진심 어린 연주에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안으로 삼킨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수술을
두 번씩이나 하고
손발톱이 빠지고
타들어가는 항암 주사를 수십 번 맞으면서도
내 앞에선 애써 웃음을 보이는 그녀
그녀가 지쳐가는 만큼 나도 지쳐간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나도 안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또 한편으로 피어오르는 삶의 미련이 괜히 미안해지는 그녀
내가 아파할까 봐 마음껏 울지도 못하는
그녀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내 심장은 욱신욱신 쑤셔온다
-전문(p. 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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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봄(93)호 <신작시 Ⅱ> 에서
* 서양원/ 2011년 『시선』으로 등단, 시집『훨훨 』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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