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이문동 도루묵 지붕/ 노해정

검지 정숙자 2024. 3. 27. 01:56

 

    이문동 도루묵 지붕

 

     노해정

 

 

  비술나무 서 있는 동네 어귀에

  소복한 눈 위로

  삽 긁는 소리

 

  골목 모퉁이 작은 가게엔

  담배 과자 김치 콩나물 없는 게 없고

  새끼줄 같은 골목길로 들어가면은

  도루묵 만한 하숙집들이 

  연탄 내를 여기저기 연신 풍겼다.

 

  기차가 오가는 철길 건널목

  댕댕댕 소리 맞춰 늘어선 행렬

 

  플랫폼에 올라 바라보면은

  흰 눈 맞아 하얗게 된 여러 두름의 

  도루묵 지붕들이 연기를 냈다.

 

  즐비하던 하숙집들 사라져 가고

  철길 건널목도 없어졌지만

 

  지금도 가끔, 눈 오는 날엔

  도루묵 지붕 그리워서

  전철을 탄다

   -전문(p. 129-130)

 

   -------------------------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노해정/ 2023『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수상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솔방울 소리 천둥 치는 밤/ 최동호  (0) 2024.03.29
종소리/ 손민달  (0) 2024.03.27
모자 벗은 여인/ 황규영  (0) 2024.03.27
그림자가 타고 나면/ 전길구  (0) 2024.03.26
고통의 간격/ 최은진  (0) 202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