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모자 벗은 여인/ 황규영

검지 정숙자 2024. 3. 27. 01:46

 

 

    모자 벗은 여인

 

     황규영

 

 

  여인이 모자를 벗고 왔다

 

  처절했던 여인의 암 투병 기간

  입안이 붇고 곳곳이 헐어 물 한 모금 삼키기 어렵고

  온몸의 피부는 불난 듯 붉게 벗겨지고

  근육 찢기는 듯 통증에 불면의 긴긴밤 지나고

 

  이제 막 자라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 아래로 깊어진 눈빛

  자잘한 것에도 우러나는 감사의 인사

  병 얻기 전 까칠하던 성격은 간데없이

  모든 것이 고맙다는 사람

 

  등뼈가 옆으로 휘어 삐딱하게 앉은 채

  피식 웃는다

  상처 덮어주던 모자 벗고

  고통의 굴레 벗어던진 여인

  똑바로 앉기도 어려운 굽은 등에 내 손길 머문다

 

  생의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는 시간을 지나

  한 꺼풀 고통의 껍데기 벗었다

      -전문(p.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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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황규영/ 2022『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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