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벗은 여인
황규영
여인이 모자를 벗고 왔다
처절했던 여인의 암 투병 기간
입안이 붇고 곳곳이 헐어 물 한 모금 삼키기 어렵고
온몸의 피부는 불난 듯 붉게 벗겨지고
근육 찢기는 듯 통증에 불면의 긴긴밤 지나고
이제 막 자라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 아래로 깊어진 눈빛
자잘한 것에도 우러나는 감사의 인사
병 얻기 전 까칠하던 성격은 간데없이
모든 것이 고맙다는 사람
등뼈가 옆으로 휘어 삐딱하게 앉은 채
피식 웃는다
상처 덮어주던 모자 벗고
고통의 굴레 벗어던진 여인
똑바로 앉기도 어려운 굽은 등에 내 손길 머문다
생의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는 시간을 지나
한 꺼풀 고통의 껍데기 벗었다
-전문(p.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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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황규영/ 2022년『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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