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손민달
땅 속에는 거대한 종이 있음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저 많은 새싹들이 한꺼번에 눈 뜰 리 없지
수많은 매미들이 일제히 세상에 나올 리 없지
그래서 굼벵이도 씨앗도 제 몸에 귀가 있다고 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 큰 종을 사람이 친다는 말이 있어
혹독한 겨울 지나 온 땅 간질이는 새싹 돋는 일과
숨 막히는 여름 시원하게 울리는 소리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겠어
사람들은 큰 종을 울리기 위해
수신자 없는 편지를 눌러 쓰고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동안 울기도 한다지
어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이 스스로 종이 되어 울기도 한다는데
어느 따뜻한 봄날 갑자기 울렁이는 가슴과
여름밤 내리는 소나기에 누군가 그리워 우는 것이
명백한 증거라고
땅속에는 사람들이 울리는 소리가
사람들이 종인 그 소리가
지금도 때를 기다리고 있다지
-전문(p. 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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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손민달/ 2023년『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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