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고통의 간격/ 최은진

검지 정숙자 2024. 3. 25. 01:00

 

    고통의 간격

 

     최은진

 

 

  농담이었다고 하면 빛이라도 생길까요

  오늘,

  지난밤에 당신의 안테나는 무사합니까

 

  언제든 누를 준비가 되어 있는 나는

  끝없이 늘어나는 발목으로

  당신의 파문을 훔칠 겁니다

 

  소리보다 먼저 가 닿은 빛의 속도는

  당신의 손바닥을 파고들겠죠

  이른 아침이면 

  검게 그을린 고목에 기댄 소문들

 

  아파트 잔여세대 분양 현수막이 파격으로 내몰리고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문장 아래

  이 년 동안 빌려 산 생은 궁극으로 치닫습니다

 

  저녁이 뱉어낸 하늘에 번지는 어둠

  빛보다 빠르게 가닿는 귓속말

 

  이제 당신의 안테나를 늘려 보아요

  진담을 말한다면 거울 속에 당신

  어둠을 깨워줄 환한 빛이 생길까요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전문(p. 86-87) 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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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최은진/ 2019『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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