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심모카마일드믹스
조명신
새벽 4시, 눈에서 알람이 켜지면 주머니 가득 커피믹스를 쑤셔 넣고 집을 나섭니다 잠이 덜 깬 주머니 속 녀석들이 걸을 때마다 투덜거립니다
친구를 만나는 날은 원두커피를 마시지만, 일하는 중간중간에는 휴게실로 숨어들어 맥심모카마일드믹스를 마십니다 믹스의 과묵한 편이지만 자극적인 매력에 이끌려 정수기 앞으로 끌려갑니다 나는 자동으로 100밀리 종이컵을 듭니다 컵에 물을 반쯤 붓고 3개를 한꺼번에 탑니다 그리고 꽤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며 목구멍에 쏟아붓습니다 초콜릿보다 진한 단맛은, 혀에 닿자마자 음료 광고처럼 몸 구석구석으로 뻗칩니다 구석구석을
타고 흘러 내 피는 커피로 가득할 것입니다
쌀을 팔듯 쿠팡에서 맥심모카마일드믹스 200개입 한 박스를 삽니다 한 달도 못 가 바닥이 납니다빈 쌀독을 바라보는 기분이 이러할까요
뉴스에선 설탕을 줄이라고 자주 말합니다만, 아프리카에 가면 설탕이 치료약인지 알고나 하시는지요? 하기사 한낮이면 단단히 움켜줬던 몸뚱이가 아우성을 칩니다 맥심모카마일드믹스가 독촉합니다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여차하면 제가 가루가 될 것 같습니다 뜨거운 물을 부어 하나로 섞어봅니다 쌓여가는 빈 믹스 봉지만큼 하루가 줄어듭니다 주너미를 뒤져봅니다 아직 커피믹스 봉지가 몇 개 더 남았습니다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일회용이라 싸다고 비웃는 점원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그 그림자를 구매하는 것처럼 화자는 버려진 것들이나 일회용에 애정을 갖는다. 이는 「맥심모카마일드」를 사면서 "쌀을 팔듯 쿠팡에서 맥심모카마일드믹스 200개입 한 박스를 삽니다 한 달도 못 가 바닥이 납니다 빈 쌀독을 바라보는 기분이 이러할까요"라는 자의식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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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신 시인은 시적 몽상을 통해서, 혹은 자연 서정을 통해서 바깥의 권위와 함께 눌러 일회용의 무력한 자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돌보기 위해 시를 쓴다. 몽상과 자연의 발견을 통해 시인은 바깥의 권위와 함께 무력해지지 않는 길을 찾은 듯하다. 앞으로 그의 시에서 더욱 성숙한 정신세계의 탐구를 기대해 본다. (p. 시 66-67/ 론 153 * 163) <전기철/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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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엄마를 뽑을 수 있나요?』에서/ 2024. 3. 10. <시산맥사> 펴냄
* 조명신/ 1980년 전북 김제 출생, 2022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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