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들의 도시
강영은
언제부턴가 왼쪽이 아프다.
기침하면 왼쪽 가슴이 쿨럭이고
고개 돌리면 왼쪽 등허리가 땡긴다.
어떤 권력이 점거했는지
어떤 부조리가 관여했는지
미세먼지 같은 대답을 듣는 날에는
목줄까지 뻣뻣하다.
내 몸의 기득권자는 누군가요.
내가 아닌가요?
당귀즙을 앞에 놓고 외쳐 보아도 단단한 근육질에 묶인
도시는 오른쪽으로 돌아서지 못한다.
어쩜 여기는 인형들의 도시일지 몰라,
선반 위에 놓인 목각인형처럼 사지를 내려놓고
빙그르르 돈다.
누가 총을 들이댄 것도 아닌데
네, 네, 그렇군요,
유리 벽에 박힌 나를 보려고 선 채로 돈다.
움직이는 벽에 애걸하듯 산 채로 돈다.
고통의 계단을 높이는 건 누구일까,
계단 위에 놓인 목에 붕대를 감고
계단 아래까지 내려간다.
어느 쪽에도 유리한 증언은 하지 않겠어요,
당신과 나는 경계에 서 있을 뿐이니까요,
구어체의 문 앞에 문어체인 당신은 대답이 없다.
택시를 탄다.
윈도 브러시는 좌우지간 안개 흐르는 길을 지우는데
어느 병원으로 모실까요,
앞만 노려보는 내게 운전기사가 물어본다.
글쎄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문-
해설> 한 문장: 후반부에서 화자는 "당신과 나는 경계에 서 있을 뿐"이므로 "어느 쪽에도 유리한 증언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중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구어체의 문 앞에 문어체인 당신은 대답이 없다."에서 드러나는 것은 "나"와 "당신" 간의 소통의 부재와 단절이다. 그리고 화자가 "택시를 탄" 후 "어느 병원으로 모실까요"라고 묻는 "운전기사"에게 "글쎄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는 모습은 이러한 도시 현실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지향점을 찾지 못하는 인간상을 알레고리로 형상화한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강영은의 '디스토피아적 냉소와 형이하학적 탐구를 시도하는 도시 풍자'의 시 양식이 형상화하는 미학적 특이성 및 구조화 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강영은의 '도시 풍자'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에 기후 위기에 대한 알레고리를 중첩시키고 이러한 현실에 좌우되는 인간들의 주권에 대한 회의 및 그 병폐와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을 결부시키며, 더 나아가 "나"와 "당신" 간의 소통의 부재와 단절뿐만 아니라 주체의 방향 상실과 지향성 부재까지 접속시키면서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강영은의 대표적인 두 가지 시적 양식인 '존재론적 성찰과 형이상학적 탐구를 시도하는 자연 서정'과 '디스토피아적 냉소와 형이하학적 탐구를 시도하는 도시 풍자'는 대척점에 위치하면서 이분법적으로 양분되는 양식이 아니라 상호 교섭하고 침투하는 복합적인 관계망을 형성한다. (p. 시 98-99/ 론 140~141) <오형엽/ 문학평론가 · 고려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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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너머의 새』에서/ 2024. 3. 1. <한국문연> 펴냄
* 강영은/ 제주 서귀포 출생, 2000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녹색비단구렁이』『최초의 그늘』『풀등, 바다의 등』『마고의 항아리』『상냥한 시론詩論』외 2권, 시선집『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에세이집『산수국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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