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비정전
손현숙
다리 없는 새의 이야기를 안다 일평생 허공을 밀면서 날아다니는 이의 이야기는 허구다 잠을 잘 때도 바람의 등을 타야 한다는데, 거짓말처럼 죽어서야 겨우 땅 위에 몸을 내릴 수 있다는데,
그는 죽어서 말을 한다 모자를 써라, 양말을 신어라, 잠이 오지 않으면 그냥 눈이라도 감고 있어라, 나는 없는 그를 쓰고 신고 팔짱까지 끼면서 거리를 쏘다니곤 한다 이것도 물론 허구다
꿈속에서 이별을 하고 화들짝 놀라서 베갯잇을 흠뻑 적셨던 기억, 더 이상 사람을 만들지 않는 몸이 만삭으로 산통을 겪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편지 속의 내용처럼 혼자서 입술을 모았다 떼는,
-전문-
시인의 산문> 한 문장: 다리가 없는 새의 이야기를 안다. 새는 살아있는 동안은 하늘을 계속 날아야 하는데, 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도 허공을 지붕 삼아 바람의 등을 타야만 한다. 그런데 새가 딱 한 번 기적처럼 땅에 몸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이 도래하는 그때라는 것. 그러니까 새는 죽음을 통해서만 땅으로 몸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새의 입장에서는 바로 완성의 한때, 자유인 것이다. 일평생 허공을 밀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의 이야기는 물론 허구다. 그러나 죽음의 한때, 완성을 맛본다는 새의 이야기는 시처럼 벼락과도 같은 이야기였음에 틀림이 없다. (p. 시 107/ 론 110-111) <저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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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에서/ 2023. 12. 20. <리토피아> 펴냄
* 손현숙/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너를 훔친다』『손』『일부의 사생활』, 사진산문집『시인박물관』『나는 사랑입니다』『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마음 치유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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