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바다, 저 건너에서 누가 온다 외 1편/ 손현숙

검지 정숙자 2024. 1. 28. 01:03

 

    바다, 저 건너에서 누가 온다 외 1편

 

    손현숙

 

 

  수평선 너머로 별이 진다 달은 그믐으로 가고 나는 점성술사처럼 사라지는 포말의 미래를 예견한다

 

  말없이도 한 사흘 넘어 닷새까지도 견뎌야 하던 때, 바닷새 울음소리 들렸다 울음으로 물결이 출렁인다 소리도 가슴으로 듣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노을이 물드는 곳에서 새들이 온다 세상이 기울어지면 나도 함께 기울어져서 중심을 옮기는 방법, 바다는 출렁이면서 제 몸의 각을 잡았다 그믐에도 눈을 감으면 눈 속에 환한 달이 뜨기도 했다

 

  밀물 때가 되면 바다는 천천히 몸을 연다 눈을 감고 먼 곳을 보면 들리는 소리, 물의 깊이로 가면서 오는 사람이 있다

    -전문(p. 57)

 

 

    --------------------------

    멀어도 걷는 사람

 

 

  당신의 왼손은 나의 오른손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반대쪽으로 걷는다 가끔은 당신을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들판을 가로지르는 나무들 하얗게 손사래 친다 생각난 듯, 이름을 부르면 모르는 얼굴이 뒤돌아다 본다

 

  당신은 어깨를 찢어서 부글거리는 흰피, 휘파람을 불면 꽃들은 만발한다 가을 개 짖는 소리는 달의 뒷면에서 들려오고 눈을 뜨지 못한 강아지는 꿈 밖으로 나가서야 젖꼭지를 물 수 있는데

 

  담장 밖에 둘러쳐진 오죽의 둘레는 그림자가 없다 대나무 숲으로 돌아가야 이름이 돌아오는데, 당신은 멀어도 걷는 사람 도무지 말을 모르겠는 여기, 눈빛으로 기록된 말들 속에서 없는 당신은 다정하다

    -전문(p. 15)

 

  ---------------------

  *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에서/ 2023. 12. 20. <리토피아> 펴냄

  * 손현숙/ 1999『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너를 훔친다』『손』『일부의 사생활』, 사진산문집『시인박물관』『나는 사랑입니다』『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마음 치유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