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에도 멍이 든다
정여운
누가 저 방문에 목숨 한 숟가락 꽂았을까
추위는 검은 두루마기 같은 구름 두르고 찾아왔다
안방이 단단히 잠겨 있다
나비장석에 걸려 있는 놋쇠 빼다가
왜 목숨 하나가 갇혀 있는지를
네 발로 기어다닐 때 암죽을 먹여주고
두 발로 걸어다닐 때도 도시락 챙겨주고
두레상 펼쳐놓고 함께 밥을 먹던
그 숟가락을 생각한다
곰팡이 푸르게 슬은 모진 쇠붙이 하나
겉과 속을 나누는 문 앞에서
늙은 숟가락이 늙은 사람을 붙들고 있다
명치 끝 방에 피멍이 드는 밤이다
삭은 문이 흔들리며 몸서리치고 있다
휠체어 바퀴 테두리가 반짝인다
뼈만 남은 반달 숟가락에 얼굴이 비친다
평생을 한 몸처럼 입속에서 살아온 쇠붙이
아버지의 목숨 한술 뜨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첫머리부터 범상하지가 않다. "누가 저 방문에 목숨 한 숟가락 꽂았을까"라는 질문이 그렇다. "추위는 검은 두루마기 같은 구름 두르고 찾아 왔"는데, "안방이 단단히 잠겨 있"는 것이다. "나비장석에 걸려 있는 놋쇠 빼다가/ 왜 목숨 하나가 갇혀 있는지"를 생각한다. "네 발로 기어다닐 때 암죽을 먹여주고/ 두 발로 걸어 다닐 때도 도시락 챙겨주고/ 두레상 펼쳐놓고 함께 밥을 먹던/ 그 숟가락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즉 다시금 돌아가기 어려운 원초적 향수의 세계를 뭉클하게 불러일으킨다. 뒤이어서 "곰팡이 푸르게 슬은 모진 쇠붙이 하나/ 겉과 속을 나누는 문 앞에서/ 늙은 숟가락이 늙은 사람을 붙들고 있다"라는 장면이 제시된다. "모진 쇠붙이", "늙은 숟가락"이 "늙은 사람"을 붙들고 있다는 표현은 애절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명치 끝 방에 피멍이 드는 밤"인 것이다. 하여 "삭은 문이 흔들리며 몸서리치고 있다". 그 순간 "휠체어 바퀴 테두리가 반짝"이고 "뼈만 남은 반달 숟가락에 얼굴이 비친다". 끝 연은 어떻게 맺고 있는가? "평생을 한 몸처럼 입속에서 살아온 쇠붙이"인 낡은 숟가락이 "아버지의 목숨 한 술"을 뜨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통해 아픔이 절정에 닿는 순간이다.
밀도 높은 서정성과 더불어 언어미학적 직조의 산물인 「문에도 멍이 든다」는 『서정시학』 신인상 당선작 중 한 편이다. 그가 얼마나 시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게 하는 작품이다. (p. 시 18-19/ 론 132-133) <이정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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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문에도 멍이 든다』에서/ 초판 1쇄 2021. 10. 1./ 초판 2쇄 2023. 1. 17. <현대시학사> 펴냄
* 정여운/ 경북 대구 출생, 2013년『한국수필』로 수필 부문 & 2020년『서정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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