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가난한 신부/ 손(김)희숙

검지 정숙자 2023. 10. 23. 14:05

 

    가난한 신부

 

     손(김)희숙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큼

  살아온 고    향

  이민 가방 두 개의 부피로 정리하고

  그대 이름으로 삶을 옮기던,

 

  시집 몇 권

  도자기 몇 점

  이루지 못한 꿈

  몇 조각 챙겨든

  가난한 신부였다

 

  시간이 흐르지 않던

  낯선 거리

  풋풋한 꿈 어루만지며

  시린 뿌리 내리려 바둥거리던

  여름 나라의 겨울나무

 

  낯선 사람들이 오고가는 언덕배기

  작고 나지막한 베란다에 서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기다리다

  죽음처럼 잠이 들면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오고

  무상으로 햇살이 쏟아지던 베란다에서

  부서진 내 꿈 조각을 쪼아 먹던

  이름 모를 새들

 

  ············

  ············

 

  그 언덕

  새들은 날아가고

  누렇게 빛나는

  가난한 신부의 사진 한 장

     -전문(p. 165-166)

  * 영남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1987년 하와이 이민, 『시문학』 데뷔, 제5회 동포 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 재미 시인협회 회원, 하와이 한인 문학동인회 초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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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와이 한인문학동인회 엮음『하와이 시심詩心 100』에서/ 2005. 1. 5. <관악>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