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제11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눈 내리는 대숲가에서
송수권(1940-2016, 76세)
대들이 휘인다
휘이면서 소리한다
연사흘 밤낮 내리는 흰 눈발 속에서
우듬지들은 흰 눈을 털면서 노래하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다
어떤 대들은 맑게 가락을 地上에 그려내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다
눈뭉치들이 힘겹게 우듬지를 흘러내리는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삼베 옷 검은 두건을 들친 백제 젊은 修士들이 지나고
풋풋한 망아지떼 울음들이 찍혀 있다
연사흘 밤낮 내리는 흰 눈발 속에서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밤중 암수 무당들이 대가지를 흔드는
붉은 쾌자자락들이 보이고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넘는
미친 불개들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전문(p. 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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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5회 지용제 사화집 『어머니 범종소리』/ 2022. 9. 14. <옥천군· 옥천문화원· 지용회> 펴냄. (비매품)
* 송수권/ 전남 고흥 출생, 1975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산문에 기대어』『꿈꾸는 섬』『아도啞陶』『새야 새야 파랑새야』『우리들의 땅』『자다가도 그대 생락하면 웃는다』『별밤지기』『들꽃 세상』『초록의 감옥』『파천무』『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 』『시골길 또눈 술통』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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