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85

[박미산의 마음을 여는 시] / 극지 行 : 정숙자

- ⟪세계일보⟫ 2022. 7. 11. | 박미산의 마음을 여는 시 _작품론 극지 行 정숙자 한층 더 고독해 진다 자라고 자라고 자라, 훌쩍 자라오른 나무는 그 우듬지가 신조차 사뭇 쓸쓸한 허공에 걸린다 산 채로 선 채로, 홀로 그러나 결국 그이는 한층 더 짙-푸른 화석이 된다 - 시집 『공검 & 굴원』 p. 19 [박미산의 마음을 여는 시] _「극지 行」 작품론/ 박미산 시인 태백산을 오르다 보면 능선 주변에 주목 군락지를 볼 수 있습니다. 주목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는 천연기념물입니다. 천 년을 살아온 주목은 웅장하고 신비롭습니다. 우리는 아름드리 거목을 보면서 세월의 흔적과 자연의 신비함에 탄성을 지르지만, 천 년을 살아온 주목 우듬지는 극지를 향해 올라가다가 쓸쓸한 허공에 걸려 고..

수피아_시산맥 회원이 읽은 감동시/ 얼음은 직선으로 부서진다 : 정숙자

얼음은 직선으로 부서진다 정숙자 녹음~ 흐름~~~ 이미 나유타 겁의 경험을 내재한 그 그의 순수는 선천적이라지만, 어느 정도는 경험의 소산일 거야. 그의 전신, 혹은 그의 의식은 어떤 경우에도 (가급적) 대상을 왜곡지 않아. 볕을 만나면 유유히, 혹한이 스미면 서서히 멈추곤 하지 그러나 만일 꽁꽁 언 그를 누군가 가격한다면 물답게. 얼음답게. 즉각적으로. 온몸으로. 대상을-정황을-상황을 흡수하지. 얼핏 부서져 보이지만 그건 수용이야. 온몸으로 받아들인 대상을-정황을-상황을 분석/파악할 수 있게 되지. 깨어진 조각조각 면면마다- 선마다- 비의가 눈떠. 왜 아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물은 사유하는 물이므로 통증을 길쌈..

정겸 [7월의 좋은 시] / 극지 행 : 정숙자

- ⟪서울뉴스통신⟫ 2022. 6. 30. |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_정겸/ 시인 극지 행 정숙자 한층 더 고독해 진다. 자라고 자라고 자라, 훌쩍 자라 오른 나무는 그 우듬지가 신조차 사뭇 쓸쓸한 허공에 걸린다 산 채로 선 채로, 홀로 그러나 결국 그이는 한층 더 짙 푸른 화석이 된다 ------------ 시평詩評_정겸/ 시인 정숙자 시인의 시집 『공검 & 굴원』을 읽는 동안 가끔씩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삶과 죽음이라는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명제 앞에서 고민을 하며 그로 인한 생각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적막감과 허무의 공포가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시집 속에 도사리고 앉아 있는 시 「극지 행」은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

[최형심의시 읽는 아침] / 북극형 인간 : 정숙자

- ⟪내외일보⟫ 2022. 6. 30. |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_해설 북극형 인간 정숙자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다 그 영롱함 그 무구함 그 다정함 이, 무참히 썩거나 재가 되어버린다 다음으로 아까운 건 뇌가 아닐까 그 직관력 그 기억력 그 분별력 이, 가차 없이 꺾이고 묻히고 만다 (관절들은 또 얼마나 섬세하고 상냥했던가) 티끌만한 잘못도 없을지라도 육신 한 덩어리 숨지는 찰나. 정지될 수밖에 없는 소기관들. 그런 게 곧 죽음인 거지. 비 첫눈 별 의 별 자 리 헤쳐모이는 바람까지도 이런 우리네 무덤 안팎을 위로하려고 철따라 매스게임 벌이는지도 몰라. 사계절 너머 넘어 펼쳐지는 색깔과 율동 음향까지도 북극에 길든 순록들 모두 햇볕이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우리가 몸담은 어디라 한들 북..

[울산광역매일] 시가 흐르는 아침/ 죽은 생선의 눈 : 정숙자

- ⟪울산광역매일⟫ 2022. 6. 15. | 시가 흐르는 아침- 죽은 생선의 눈 정숙자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 (차라리) 그런 마음. 꺼내면 안 돼. 왜냐고? 저 머나먼 경계 밖에서 그랬잖아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진정으로) 그런 바람 포개다가 여기 왔잖아 엄마-wormhole을 통해 왔잖아 갖고 싶었던 그 삶 지금이잖아. 여기가 거기잖아 죽어본 적 없으면서 겁 없이 ‘죽음 희망’ 그런 거 품지 말자꾸나. 우리! 경험으로 죽는 건 괜찮지만 경험일 수 없는 죽음 속에서 오늘 이 순간 아주 잊은 채 다시 태어나고 싶을 거잖아? 이게 몇 번째 생일까 생각해 봤니? 만약 말이야. 그 비밀이 열린다면, 우린 또 얼마나 큰 후회와 자책/가책에 시달릴까 생각해봤니? 접시에 누운 생선이 나를 바라보면서… 종을 ..

김정수_詩想과 세상/ 푸름 곁 : 정숙자

- ⟪경향신문⟫ 2022. 6. 6. | 詩想과 세상_김정수 시인 푸름 곁 정숙자(1952~ ) 어떻게 해야 늘 그들이 될 수 있을까 바람 지나갈 때 침묵을 섞어 보낼 수 있을까 마음 걸림 들키지 않고 조용히 몇 잎 흔들며 서 있을 수 있을까 바위 햇살 개미 멧새들… 사이 천천히, 느긋이 타오를 수 있을까 베이더라도 고요히 수평으로 쓰러질 수 있을까 구름 속으로나 손 뻗으며 느리게, 느리게 바다로-깊이로만 울 수 있을까 - 시집 『공검 & 굴원』 p-53 ▶ 詩想과 세상 _ 김정수/ 시인 이 시의 첫 행 “어떻게 해야 늘 그들이 될 수 있을까”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화자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채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을 오래 지켜보며 곁으로 다가가려 한다. 불러..

먼 곳에서 도는 새벽/ 정숙자

먼 곳에서 도는 새벽 정숙자 열 달 동안이나 덮어놓고 살았어 시 한 줄 쓰지 않고 (ㅎㅎ) (ㅋㅋㅋ) 그렇게 살았다면 아무것도 안 한 거지 보이지 않는데 느껴지지 않는데 잡히지도 않는데 썼다면, 그건 억지였거나 헛것이거나 사기였겠지 열린 열 시에도 유리창 너머 리기다소나무 하염없이 바라보며 누워있을 수 있는 자유. 일상에 대한 강박 없이 퍼져버릴 수 있는 멈춤. 그 늘어진 자유의 무거움을 아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침묵밖에 남은 게 없는 공간을 (ㅎㅎ) (ㅋㅋㅋ) 무작정 견디었지만 억지였거나 헛것이거나 사기였거나 어쨌든 써야 했을까 카지노에 빠진 게이머와는 다르니까 우리에게 시는 인생이니까 다시 세워야 할까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 당장은 불이 안 붙고 타닥거릴지라도 나중에는 중심을 잡고 타올라 ..

퀴리온도/ 정숙자

퀴리온도 - 미망인 정숙자 아직 죽음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이리저리 배치하네. 죽음에 관한 미로도 가꾸어내네. 겹겹으로 죽음에 포위된 자는 죽음은커녕 삶에 대해서조차 한마디 못하고 마네. 이런 게 바로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침묵해야 되는 것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침묵이 급습― 덮쳐버리는 게 아닌가. 아무 색도 아닌 시간이 떠내려가네. 꽃 잃고 잎 지우는 바위 눈뜨고 말 묻고 외로 나앉아버리는 바위 아직 죽음과 떨어져 있을 땐 그도 죽음 세포를 사변적 논리적 미학적으로 성찰했었네. 그런데 불과 일 년 사이 피붙이 셋씩이나 뜨고 보면 열쇠 꾸러미 뚝 떨어진대도 무슨 언어를 꺼낼 수 있으리오. 이렇게까지 사라지는 건가, 기호네 파토스네 전위네 신경을 자극하던 그 모든 선들이 저렇게까지 사건지평선에..

정오의 눈/ 정숙자

정오의 눈 정숙자 우리는 거기. 그 안에서 덤벙거린다 그 시력은 퇴화되지 않는다 밤에조차 감지 않지만 어떤 한마디도 흩지 않는다 다 알면서 다 봤으면서도 누가 무엇에 걸렸을지라도 비할 바 없이 따뜻하고 맑고 조용한 그 눈이야말로 (그러나) 가장 무서운 눈일 수 있다 총괄적으로 담담한 그 눈이야말로 그만의 비공개적 합목적적 눈일 수 있지 않은가 하. 그러면 어때. 내 눈이 그 눈을 속이지 않는다면 그 눈도 내 눈을 속이지 않는다. 그저 걸으면 된다. 그 눈은 사심 없는 눈. 인간으로선 도저히 '모방'에도 접근할 수 없는 눈. 개벽 이후 하루에 단 한번 껌뻑이는 눈. 그 큰 눈을 믿고 골짜기 물은 절벽에서도 힘차게 뛰어내리지. 호수는 돌에 맞아도 굴렁쇠를 굴리며~ 굴리며~ 굴리며~ 웃지. 더 많이 아픈 가슴..

크로노스/ 정숙자

크로노스 정숙자 썩어나가는 이 불꽃을 그는 내게 심으셨구나 일찍이 썩어나가는 불꽃으로 피워야 할 꽃을 그는 내게 심으셨구나 일찍이 그걸 알았다 한들 어쩔 것이냐 썩어나가는 이 마음은 썩어나가는 불꽃 꽃봉오리 돌아오는 먼 산은 문드러져 묻힌 마음 일찍이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불꽃을, 그는 내 생애를 택하셨구나 그것을 새파랄 때 알았다 한들 이제 곧 알았다 한들 오늘 종일 썩어나가는 이 불꽃을 어쩔 것이냐? 하늘인들······ 강물인들······ 우리 모두 어쩔 것이냐? 어쩔 것이냐? 일찍이 단 한 번 그러신 것을! -『시선』2019-가을호 --------------------------- * 시집 『공검 & 굴원』(1부/ p. 32-33)에서/ 2022. 5. 16.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