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85

정숙자 시집『공검 & 굴원』/ 해설 : 권성훈

성속聖俗과 시인의 사유 재산 -『공검 & 굴원』 (미네르바, 2022) 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혼자란 얼마나 오래 익힌 석류 알인가. 「1인의 눈물」중에서 1. 어떤 시인은 이성으로 해독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사유를 탐구하며 세계를 건너간다. 그 속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 자체로 성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는 명검같이. 한 번 칼집에서 나온 칼날은 결코 명검이 될 수 없듯이 양날의 기표와 기의를 가진 시는 신성함 속에서 현현된다. 세속의 세계 안의 정화된 존재 양식처럼 번득이는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시편은, 성화된 언어의 집에서 수많은 의미를 방출하는 것. 거기에 언어로 탈구된 ‘환원의 심금’은 경험적으로 분산된 이질적이고 다양한 것들을 행간에서 통합하는 사유의 자리다. 이 사유의 자리는 불확정적인 공..

이송우_이 시집을 주목한다/ 정숙자 『공검 & 굴원』

운명의 시간을 여행하는 철학자, 천 개의 눈을 가진 메두사의 슬픔 - 정숙자 시집 『공검 & 굴원』(2022. 미네르바) 이송우/ 시인 말없이 서 있는 나무의 우듬지를 쳐다봤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모두가 낮은 곳을 향하는데, 그이는 ‘그 우듬지가/ 신조차 사뭇 쓸쓸한/ 허공에 걸’렸다가, ‘한층 더 짙-푸른/ 화석이 된다’(「극지 行」). 우직하게 한 길을 걷는 존재는 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따라 한층씩 오르는 나무의 고독함을 느끼는 것은 시인이다. 정숙자 시인의 『공검 & 굴원』은 쓸쓸하지만 하늘 향해 나아가는 천형을 받아들인 철학자의 심정을 담았다. 시인은 공검空劍이라는 신조어를 통해서 ‘구름이 움찔하’도록 ‘허를 찌르는 칼’(「공검(空劍)」)인 나무의 심상을 펴..

김정수_계간 시 전문지『사이펀』 주목, 이 시인을 만나다/ 정숙자

"그 짧은 순간의 빛이야말로 행복의 씨앗이지요" 정숙자 시인 인터뷰: 김정수/ 시인, 사이펀 편집위원 사진: 이성수/ 시인 장소: 정독도서관/ 야외정원 계간 『사이펀』 ‘주목, 이 시인을 만나나다’는 올해 열 번째 시집 『공검 & 굴원』을 낸 정숙자 시인을 만났다.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한 정숙자 시인은 시집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 『그리워서』, 『이 화려한 침묵』, 『사랑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은 무너진다』,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뿌리 깊은 달』,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공검 & 굴원』과 산문집 『행복음자리표』, 『밝은음자리표』를 냈다. 제1회 황진이문학상, 제8회 들소리문..

김효은_웹진『시인광장』시인 탐방/ 정숙자

정숙자 시인을 만나다 - interviewer: 김효은(시인,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interviewee: 정숙자(시인) ■ 김효은: 정숙자 시인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일상이 마비되고 삶의 모습들이 180도 전환된 것 같아요. 문학계도 행사나 모임들이 대부분 취소되거나 간소화되었어요. 그만큼 작가들끼리의 교류도 줄어든 것 같고 서로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새로운 친분을 쌓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고요. 그래도 선생님 얼굴을 뵐 수 있어 반갑고 기뻤습니다. 거리 두기가 법제화되고 서로가 멀어지고 고립된다 해도 인간의 삶은, 특히 작가의 삶은 어차피 고독한 거니까요. 선생님 시 「극지 行」에서처럼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한층 더 고..

주경림_유유한 서정의 물결(발췌)/ 진무한 : 정숙자

진무한 정숙자 거기) 잠기지 않으면 자갈이 보이지 않는다 물결도 지느러미 띄워주지 않는다 한 달, 일주일, 하루는 고사하고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거) 마주하지 않으면 미완/미답의 컬러 찾을 수 없다 우선, 많은 나무토막을 깎는다 단단히 마음먹은 뒤 울타리를 친다 팻말도 건다 【〔고독양식장〕】 비가 쏟아지기를 기다린다 태양의 방문 기다린다 드디어 자갈이 움트기 시작한다 숨소리가 물결을 일으킨다 알을 깬 깃털구름 일렁거린다 그거) 풍성해진다, 출발이다, 여기서 환상 저― 너― 머― 고독이 날 점령하기 전 내가 장악한다 돌연변이 고독 거기)서 배양한다, 가꾼다, 다만 개인용이므로 절대 비매품 -전문, 시집『공검 & 굴원』(2022. 미네르바) ▣ 유유한 서정의 물결/ 환상 저-너-머-의 오지奧地 탐험(발췌)_..

이성혁_시가 할 수 있는 일들(발췌)/ 공검(空劍) : 정숙자

공검空劒* 정숙자 눈, 그것은 총체, 그것은 부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뿐더러 능선과 능선 그 너머의 너머로까지 넘어간다 눈, 그것은 태양과 비의 저장고 네거리를 구획하고 기획하며 잠들지 않는 그 눈, 을 빼앗는 자는 모든 걸 빼앗는 자다, 하지만 그 눈, 은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 칼이며 칼집이며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이다 양날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수천수만, 아니 그 이상의 팔이라 할까 (나부끼지 않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바람-그냥 보냅니다. 대충 압니다. 나누지 않은 말 괜찮습니다. 여태 잎으로 수용하고 뿌리로 살았거든요. 대지의 삶은 적나라한 게임입니다. 간혹 구름이 움찔하는 건 어느 공검에게 허를 찔렸기 때문, …일까요?) 공검은 피를..

이현서_절대의 세계, 매혹의 세계/ 북극형 인간 : 정숙자

북극형 인간 정숙자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다 그 영롱함 그 무구함 그 다정함 이, 무참히 썩거나 재가 되어버린다 다음으로 아까운 건 뇌가 아닐까 그 직관력 그 기억력 그 분별력 이, 가차 없이 꺾이고 묻히고 만다 (관절들은 또 얼마나 섬세하고 상냥했던가) 티끌만한 잘못도 없을지라도 육신 한 덩어리 숨지는 찰나. 정지될 수밖에 없는 소기관들. 그런 게 곧 죽음인 거지. 비 첫눈 별 의 별 자 리 헤쳐모이는 바람까지도 이런 우리네 무덤 안팎을 위로하려고 철따라 매스게임 벌이는지도 몰라. 사계절 너머 넘어 펼쳐지는 색깔과 율동 음향까지도 북극에 길든 순록들 모두 햇볕이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우리가 몸담은 어디라 한들 북극 아닌 곳 없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녕 햇빛을, 봄을 기다리지. 죽을..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시집/ 작품론 : 김효은

견딤 & 겪음, 그리고 삶의 시학 -정숙자 시집『공검 & 굴원』(미네르바) 김효은 삶이 삶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먼저 ‘ㅁ’이 그리고 ‘ㄹ’이 그리고 ‘사’만 남는다. 거기서 또 한 획 멀어진다면 ‘시’만 남게 되겠지. 최후까지 남는 게 시였다니! 그리고 조금 더 훗날 ‘ㅅ’만 남게 된대도 내게는 태양이야. 시옷, 시옷이니까. -정숙자, 「죽음의 확장-미망인」 부분 누군가는 문학을 살아간다. ‘하다’ 보다는 ‘산다’, ‘하기’보다는 ‘살기’, 살아가거나 살아내는 것, 이는 결국 주어진 시간들, 닥쳐온 사건들, 타자와의 관계성에서 오는 상처와 고통들에 대하여 그 모든 견딤과 겪음을 명명하거나 의미한다. 우리는 하여, 시를 살고 소설을 살고 고통을 살고 기쁨을 살고 욕망을 살고 때로는 죽음까지도 살아낸다...

주경림_공검(空劍)의 진면목을 보다/ 정숙자 시집『공검 & 굴원』

공검(空劍)의 진면목을 보다 -정숙자 시집『공검 & 굴원』(미네르바) 주경림/ 시인 정숙자 시인의 열 번째 시집 『공검 & 굴원』은 앉은 자리에서 술술 쉽게 읽혀지는 시집은 아니다. 평년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 속에 이마에 땀을 닦아가며 사흘에 걸쳐 읽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극지 行」으로 시집을 열어 「멜랑꼴릭 메두사」로 마감했으니 오지奧地 탐험이다. “예술작품은 단순히 우리가 보는 것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지 않았거나 볼 수 없었던 것을 깨닫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를 사각지대 속으로 안내한다.”는 덴마아크 출신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1947~ )의 말을 상기하며 읽었다. 시집을 보낼 때마다 시 한 편과 감상을 정갈한 손글씨로 적어 헌 종이로 예쁘게 새로 만든 봉투에 담아..

[이성혁의 열린 시세상] / 공검(空劍) : 정숙자

- ⟪경북매일⟫ 2022. 8. 25. | 이성혁의 열린 시세상 _작품론 공검空劍 정숙자 눈, 그것은 총체, 그것은 부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뿐더러 능선과 능선 그 너머의 너머로까지 넘어간다 눈, 그것은 태양과 비의 저장고 네거리를 구획하고 기획하며 잠들지 않는 그 눈, 을 빼앗는 자는 모든 걸 빼앗는 자다, 하지만 그 눈, 은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 칼이며 칼집이며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이다 양날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수천수만, 아니 그 이상의 팔이라 할까 (나부끼지 않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바람-그냥 보냅니다. 대충 압니다. 나누지 않은 말 괜찮습니다. 여태 잎으로 수용하고 뿌리로 살았거든요. 대지의 삶은 적나라한 게임입니다. 간혹 구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