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따뜻하게

제 마음 비었을 때에 ―思慕․10 정숙자 제 마음 비었을 때에 당신의 모습 보여 주셔요 찾아 올 이 없는 시간에 당신의 음성을 들려 주셔요 외로이 강 건널 때에도 당신이 기다림을 알려 주셔요 혼자서 잠든 베개 위에는 당신의 사랑 놓아 주셔요. ------------ My Mind Jung, Sook-Ja When my mind is empty, Let me see your face. When nobody visits me, Let me hear your voice. When I solitarily go across the river, Let me know your waiting. Please lay your love on the pillow, on which I fall asleep alone. (Tra..

세차게 몰아가는 바람 속에도 ―思慕․11 정숙자 세차게 몰아가는 바람 속에도 별들은 한 자리 빛나옵니다 낮에 숨던 슬픔 밤이면 짙어 푸르고 붉게 고이는 눈매 평생에 못 뵈올 임이라 한들 기다림을 버리고 살자 하오리 임께서 걸으신 발자국 위에 속살 같은 마음 포개나이다 참지 ..

들리지 않는 임의 목소리 ―思慕․12 정숙자 들리지 않는 임의 목소리 단애(斷崖)의 하루를 어찌 또 걸으리이까 높이 떴다가 주저앉는 소망에 바닷물이 퍼렇게 멍드나이다 닫힌 채 열리는 아침 어디를 디디면 벼랑이 아니오리까 제 가슴으로 떨어지는 그리움 위에 애도하며 모여드는 ..

나고 자람, 맺고 짐이 ―思慕․13 정숙자 나고 자람, 맺고 짐이 임의 뜻 안에 있아옵니다 입술 트는 신열 납 같은 이마 위에 기적의 손을 얹어 주소서 이웃들은 저마다 꿈 속으로 떠났아온데 파수보듯 뜬눈으로 지키는 설야(雪夜) 창 밖 매화는 봉지마다 향(香)을 담고 추위도 모르는 양 ..

강 건너 기슭에 파아란 불빛 ―思慕․14 정숙자 강 건너 기슭에 파아란 불빛 어느 집 추녀 아래 별이옵니까 어떤 이의 외롬을 달래기 위해 숲 속에 초롱으로 걸었나이까 눈보라에 발을 묻고 바라볼 때도 천국의 외등인 양 고운 깜박임. 뉘의 그리움 애잔히 모여 저리도 푸른빛이 되었나..

한 길을 원하여 ―思慕․15 정숙자 한 길을 원하여 여럿의 길을 버렸나이다 해와 달을 이웃 삼으며 다북쑥 언덕에 쉬이는 걸음 물에 비친 청산 소나무 위엔 학우(鶴友)들이 나래를 헹구옵니다 깃에 묻어 티 아닌 것 있으오리까 슬픔도 얼룩이라 닦은 수건에 점점이 붉은 물이 배었나이..

지친 해를 보듬는 건너ㅅ산같이 ―思慕․16 정숙자 지친 해를 보듬는 건너ㅅ같이 곤한 걸음 다정히 안으시는 임 눈물도 임 곁에선 환희가 되고 얼음도 선율되어 풀려납니다 아침은 황량하고 밤은 암울에 싸여 산 채로 봉분(封墳)에 묻히는 나날 기쁨도 넘치면 슬픔이 됨을 임의 나래 ..

이대로 고요 속을 걸어 가오면 ―思慕․17 정숙자 이대로 고요 속을 걸어 가오면 임이 계실 것만 같사옵니다 방울소리 뒤따르며 슬픈 곡조를 외우던 길 강을 건너는 임의 연(輦)은 들찔레 만발한 듯 희었더이다 아침 저녁 안개 속에서 몸 깎는 바위를 보시옵니까 연녹색 당의(唐衣) 위..

간절히 염원하여도 ―思慕․18 정숙자 간절히 염원하여도 임은 가셨나이다 더 넓어지지도 좁아지지도 아니하는 하늘 가운데 구름처럼 놓여지는 허무 별마다 나루인 양 머뭇거리며 동짓밤을 노 저어 새우나이다 오시자 떠나시는 임의 걸음, 학(鶴)이란들 울음 없이 날으오리까 동해의 ..

그대는 나에게 메아리되어 ―思慕․19 정숙자 그대는 나에게 메아리되어 골짜기 바위까지 다 울리네 봄꽃 가을꽃 무리로 피어 이 골 저 골이 꽃산이 될 때 여름물 가을물 모두 다 얼어 바람이 싸락눈을 몰고 올 때도 그대는 나에게 메아리되어 골짜기 바위까지 다 감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