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333

유년의 풍경에서/ 강나루

유년의 풍경에서 강나루 겨울에는 새벽기도를 나가는 할머니를 몇 번이고 뒤따라갔고 내가 뒤따르는 줄도 모르고 느릿느릿 지팡이를 짚은 뒤를 맞춰 걸었다. 문득, 부모님께서도 언젠가 저리 느릿느릿 지팡이를 짚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언젠가 또 손자가 그 뒤를 몰래 따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에 막 들어가던 어린 시절, 이어령 교수가 쓴 『생각에 날개를 달자』라는 시리즈를 읽었다. 이때 알게 된 고정관념이라는 개념은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신경을 쓰는 요소가 되었다. 그쯤에 읽었던 어린이논어에서 군자는 지름길로 가지 않는다, 행불유경行不有徑이라고 하는 것을 읽고 엉뚱하게 여기에 고정관념을 대입해서 왜 그래야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산을 가로지르고 구불구불 미로 같은 골목길을 텀험하며 가장 빠른 지름길을 ..

에세이 한 편 2023.08.02

자유의 자유/ 강나루

자유의 자유 강나루 민주주의와 자유는 동의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혼용하고 혼동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범위 내 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최대 의 자유를 보장하는 최소의 제약인 셈이다. 중학생 때 보았던 수많은 소설 중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일본 SF소설에서는 최악의 민주주의와 최선의 제국주의 중 어느 쪽이 국민에게 이로운가라는 주제를 배경으로 삼았다. 이 소설에서 최악의 민주주의는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다가 결국에는 수백만의 자국민은 전사시킨 제국에게 스스로 국가를 헌납하는 웃기지도 않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이 소설을 읽은 누구라도 제국주의의 정점인 황제 라인하르트가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양 웬리 장군에게 "민주주의는 인민들의 자유의지..

에세이 한 편 2023.08.02

국보 70호『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정용국(시조시인)

국보 70호『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단기 4279년(1946년) 조선어학회가 펴낸 영인본 정용국/ 시조시인 지구상에 수많은 문자가 존재하지만 그것의 창제 근원을 알 수 있는 문자는 훈민정음이 유일하다 하겠다. 1446년 세종대왕은 조정의 많은 신하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중국의 문자를 쓰고 있던 당시에 조선의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고 그것을 세상에 반포하는 행위는 상당히 큰 위험을 무릅써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종께서는 이를 반대하는 신하를 옥에 가두면서까지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더 나아가 새 문자로 한문서적을 번역 출간하여 훈민정음이 세상에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구축하는 일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은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

에세이 한 편 2023.07.22

문학이 나를 살렸다/ 이광복(소설가)

문학이 나를 살렸다 이광복/ 소설가 나는 1951년 음력 4월 30일(양력 6월 4일) 충남 부여 석성면 증산리 원증산마을 766번지에서 출생,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해 세 살 때 큰아버지 큰어머니 슬하에 양자로 들어갔다. 큰아버지 내외분은 시루봉 언덕바지 감나무 옆 윤팔병 씨네 땅에 번지도 없는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다. 좌향은 북향이었다. 내가 태어난 직후 생가 부모님은 766번지를 떠나 근처 이영우 씨네 집 사랑채로 옮겨 곁방살이를 했고, 먼저 살던 초가집은 헐리고 집터는 남새밭이 되었다. 몇 년 뒤 생가 부모님은 동네 공동우물에서 가까운 강두현 씨네 집 뒤 764번지 윤도병 씨네 초가집을 사서 이사했다. 방위는 남향이었다. 양가와 생가는 빤히 건너다보였다. 편의상 지대가 높은 양가를 윗집, 상대적으로..

에세이 한 편 2023.07.21

아버지/ 정승재

아버지 정승재/ 소설가 물질고아원이 있었다. 버려진 사물을 가엽게 여겨 집 안으로 주워 온 선배님이 있었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 와 모아두고, 날이면 날마다 그들과, 아니 그것들과 대화를 나눈 선배님이 있었다. 성찬경 선생님(시인 1930~2013, 83세). 선생님은 사물, 그것들과 무슨 대화를 하셨을까? 1930년생이시니 나의 아버지와 춘추가 비슷하시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27년, 성찬경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 약주를 드시고 온 날이면 나를 무릎 꿇려 앉히고 무슨 좋은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인생살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아 또 저 이야기구나, 벌써 수십 번..

에세이 한 편 2023.07.20

헤밍웨이의 법칙/ 이길원

헤밍웨이의 법칙 이길원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62세)에게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는 소설 자체가 시詩다. 불필요한 형용사나 부사 없이 간결한 단문으로 이루어졌다. 시를 읽는 듯 섬세한 표현으로 시인 지망생에게는 필독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유명한 대사가 많다. 파도와 싸우며 고기잡이하는 노인의 말에는 어려운 현실과 마주한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언어들이 가득하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 있을지언정 파배하진 않아.", "지금은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해."라든가 "희망을 버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 원래 좋은 일이란 계속 지속되지 않거든." 또는 "바다는 비에 젖지 않아. 어떤 시련이 와도 시련에 젖지 않아." 등등. 195..

에세이 한 편 2023.07.19

신상조_산문집『시 읽는 청소부』「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신상조/ 문학평론가 1. 미화원이 하는일, 그중에서도 '일상'(주간이 하던 일을 받아서 백화점이 문 닫을 때까지 이어가는 미화원. p. 25-13째 줄 참조)은 아무나 해도 상관 없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일에 불과하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에서 소외되는 현상은 이에서 비롯한다. 그걸 생각하노라니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이 생각난다. 책의 12장에서 이 천재적인 철학자들은 「1227년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라는 이름으로 유목민적인 기술과 토착민적인 기술을 구별한다. 아래의 글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기술' 및 그것과 관련한 문제점의 일부를 파편적이나마 쉽게 설명할 만한 사례라 여겨진다. 중세 봉건주의가 붕괴를 하였으나, 기계제 대공업이 발전할 정도로 성숙..

에세이 한 편 2023.07.12

목수의 일/ 김민식

목수의 일 김민식/ 내촌목공소 대표 어깻죽지 아래 통증이 멈추지 않는다. 사나흘 전부터는 눕지 않으면 앉거나 서 있기도 힘들다. 지난해 가을걷이를 마치고 산골짝에서 겨우내 '나무일'을 한 때문일까. 나무일이란 산에 서 있는 수종을 구별하여 벌채하고 등급을 나누며 원목을 다듬는 치목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이 과정을 거쳐 손질된 목재는 모양새에 따라 집의 기둥, 들보, 서까래로 또 가구 부재로 사용된다. 목재를 소재로 집 짓는 공인工人은 대목大木, 가구를 만드는 이가 소목小木이다. 우리는 대목, 소목으로 오랜 기간 일한 사람들 중에 특별히 솜씨가 빼어난 목공 장인에게는 존경을 보태어 대목장, 소목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로 목수木手다. 목수는 나무와 손이 조합된 단어다. 손으로 나무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자..

에세이 한 편 2023.07.09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김경식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박두진 시집 『해』 김경식/ 시인 장서藏書 속에서 단 한 권의 애장서를 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장서는 대략 2만 권쯤이나 되기 때문이다. 장서의 절반은 시집인데 1970년대 이전 시집이 약 200권쯤이다. 오래된 시집이 모두 귀중본은 아니지만 유독 이들 시집에 애정이 간다. 그중 30여 권은 귀중본으로 생각하면서 가끔 확인하곤 한다. 이 중에서 유독 의미 있는 시집을 소개하려고 한다. 1949년 에서 발간된 박두진(1916~1998, 82세) 시집 『해』 초간본이다. 우선 이 시집에는 박두진 시인이 직접 붓으로 쓴 명필 서명이 있다. 또한 그의 첫 시집이며, 대표시 「해」가 수록되어 있다. 시집 제목이 된 시 「해」는 조국의 해방을 상징한다. 이 시집이 ..

에세이 한 편 2023.07.08

판타지 소설의 원조, 우리 고전소설/ 이우상(소설가)

판타지 소설의 원조, 우리 고전소설 이우상/소설가 판타지 소설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현실과는 다른 시공간에서 초자연적 존재들에 의해, 초자연적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판타지 소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반지의 제왕』이다. 영국의 영문학자이자 소설가 톨킨(J. R. R. Tolkien)이 1950년대에 발표한 판타지 소설이다. 다음으로 꼽는 것이 다. 영국의 작가 롤링(Rowling, J. K.)이 1997년부터 발표한 판타지 소설 시리즈다. 제1권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시작하여, 2007년 제7권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끝으로 완결되었다. 전 세계에서 수억 부가 팔렸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판타지(fantsay. 공상, 공상의..

에세이 한 편 202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