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333

사랑의 이중주/ 장재화

사랑의 이중주 장재화 2020년 12월의 중국 풍경,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려는 부부들이 관청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 현재는 합의이혼이건 소송이혼이건 간에 어렵지 않게 이혼할 수 있지만 21년 1월부터는 법이 바뀌기 때문이란다. 바뀐 법에 의하면 이혼신고 후, 30일 동안 숙려기간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바뀌어 이혼 의사를 철회하면 이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법 개정 이전에 이혼하려는 부부들은 안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중국인들, 참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한다. 2019년 통계에 의하면, 950만 쌍이 결혼했고 415만 쌍이 이혼했다. 두 쌍 중에 한 쌍 꼴로 파경을 맞았다고 하니 그들은 이혼 연습 삼아 결혼하는 것 같다. 그들도 결혼식장에서 엄숙하게 서약했을 것이다. ..

에세이 한 편 2024.01.27

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시_이승희)/ 에세이 : 강재남

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 이승희 허리쯤에서 꽃 무더기라도 필 생각인지 새삼 잊었던 기억이 몸이라도 푸는지 녹색의 살들이 늘어질 대로 늘어져서 팽팽해지는 오후 녹색의 말굽들이 총알처럼 날아다니며 횡설수설 나를 잡아당긴다 슬플 겨를도 없이 구석을 살아온 내게 어떤 변명이라도 더 해보라는 듯 여름은 내게 베고 누울 저승을 찾으라 한다 구름 사이로 모르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다 누구의 유족인가 싶은데 문상 차림치고는 너무 설레는 표정이다 큰 나무 뒤에서 혼자 늙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엇을 먹는 건지 게워내는 건지 나는 못 본 체 지나간다 그렇게 몇 개의 골목을 지나면서 생각한다 어디쯤에서 그늘을 오려내고 그 자리에 숨어 이 계절을 지나가야 하는지 오려낼 자리마다 더 깊은 변명이 부글부글 끓어도 함께 썩어가자..

에세이 한 편 2023.12.09

삼학년(시_박성우) ⦁ 헛나이테(시_양진기)/ 에세이 : 강재남

삼학년 박성우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를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전문- ▶♣◀ 행간마다 동화가 빼곡합니다. 글자를 모르던 나이에 그림만으로 충분했던 동화 말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마을 한가운데 우물이 있었습니다. 우물 주변에는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고요. 달빛이 부서지는 밤에는 욱수수 잎이 저들끼리 부대끼는 소리를 냈지요. 초록의 잎들은 초록의 소리로 깊은 밤을 이야기했습니다. 알곡이 익어가는 소리가 별자리를 수놓았지요. 이렇게 동화는 책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삶 가까이에서 함께 했던 겁니다. 그것이 아름답든 서럽든 말입니다. 어떤 시는 시인의 이름만으로 가..

에세이 한 편 2023.12.09

가오슝 식당의 친절한 여주인/ 최종만

가오슝 식당의 친절한 여주인 최종만 불광산 불타 기념관을 둘러보고 가오슝 '보얼 예술특고'를 보러 가려고 택시를 불렀다. 일행이 5명이라 일반택시가 아닌 6인승 택시를 불러야 했다. 사실은 처음 이곳으로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이곳에 가서 차량을 렌트해서 다니자고 했는데 우리나라와는 국교가 단절되어 렌트가 되지 않아 택시로 이동을 해야 했다. 금년(2019년)이 아내의 8순이라 아들 삼 형제와 함께 타이완의 남부 도시 가오슝(타이완 & 대만)을 여행 중이었다. 중화민국 국민당 장개석은 중국을 대표하고 있었으나 공산당과의 다툼이 끊이지 않다가 공산당(모택동)에 밀려(1949년) 결국 타이완으로 옮겨갔다. 중화민국은 우리나라와 건국 때부터 국교를 유지해 왔으나 중국 본토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1992년..

에세이 한 편 2023.12.06

황야(荒野)의 휴머니즘(Humanism)/ 황진섭

황야荒野의 휴머니즘Humanism 황진섭 고구려인의 후예들이 한반도 북쪽 광대한 영역에 세운 나라가 발해다. 발해 옛 터전에 아무르강이 흐르고 있다. 필자가 연해주에서 바라본 아무르 강변 양안은 광대한 황무지다.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11시간 반, 시베리아 횡단철도 아케안호 편으로, 밤을 새워 달려가는 철도 연변에는 산이 보이지 않는 평원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스리스크까지 고속도로로 달려가는 112㎞, 그 벌판도 황야다. 헤이그 밀사단 수석대표였던 이상설李相卨 의사의 유허비에서 바라보는 벌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땅은 기름져 보이고, 군데군데 물이 고여 늪이 되어있거나 정리되지 않은 하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열차에서나 버스에서 황야의 수풀 속에 작은 마을들이 보였고, 마을 언저리에 듬..

에세이 한 편 2023.12.05

의사 시인의 이중생활/ 김세영

의사 시인의 이중생활 김세영 시인으로 등단한 2003년부터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명함에도 의사 김영철과 시인 김세영 두 개의 이름이 적혀있다. 낮에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저녁에는 문학모임에 갈 때가 많다. 서가의 책도 시인이 되기 전에는 대부분 의학 서적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시인이 된 후에는 시집 등 문학 서적이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다. 교우 관계도 동창이나 의사에서 시인으로 편중된 상태이다. 사람들은 의사이면서 시인까지 되었다고, 재주 많음을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훌륭한 의사도 되지 못했고, 유명한 시인도 되지 못한 얼치기 낭만주의자나 몽상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인할 때가 많다. 나는 매일 아침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양재천 둑길을 걷는 운동을 한다. 걸어가면서 시상이 떠오르면 ..

에세이 한 편 2023.11.26

매미/ 장재화

매미 장재화 여름을 대표하는 가수는 매미다. 게다가 줄곧 사랑의 세레나데만 부른다. 그뿐이랴, 하루 종일 노래하지만 목도 쉬지 않는다. 여기서 작은 궁금증 하나, 매미는 노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울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는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매미의 허물은 이라는 시를 남겼지만, 매미는 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매미소리는 짝을 찾기 위함인데 울며불며 사랑을 구걸할까. 구애求愛는 눈물보다 노래가 더 어울린다. 그뿐이랴, 매미의 텅 빈 허물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의미한다.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매미는 깍딱까딱 꽁지를 치켜들면서 노래한다. 그 소리를 들은 암컷 매미가 찾아와서 짝짓기를 하고, 짝짓기를 끝낸 수컷은 땅에 떨어..

에세이 한 편 2023.11.24

조재형_산문집『말을 잃고 말을 얻다』/ 부안 사람들

부안 사람들 조재형 한 고장을 아는 법은 거기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늙어 죽어 가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고 하였다. 크고 오래된 바다를 끼고 있는 이 고장은 노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들은 많이 하지만 꼭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더라. 이곳 사람들은 무엇보다 시가詩歌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더라. 혈혈단신으로 살다가 젊으나 젊은 나이에 거문고와 함께 묻힌 일개 기생 매창의 무덤을 500년 넘게 지켜온 그들이더라. 죽어 없어진 천한 신분의 무덤을 단지 시인이 남기고 시詩 때문에 온 고을 사람이 통틀어 지켜왔다는 예를, 나는 일찍이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매창의 흔적을 찾아보지 않고서 부안을 다녀갔다고 자랑하는 건 참으로 민망한 일이..

에세이 한 편 2023.11.05

조재형_산문집『말을 잃고 말을 얻다』/ 문전박대당한 그분

문전박대당한 그분 조재형 수사관으로 처음 임용됐을 때 나 역시 승승장구하여 국장까지 승진하고 명예롭게 퇴직하는 꿈을 꾸었다. 정년을 마친 다음 가족들 손잡고 황혼을 누리는 노년을 설계했던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 찾아온 사적인 불행은 내가 검찰을 일찍 떠나도록 당초의 계획을 수정시켰다. 내가 중도 사직의 결심을 처음 밝혔을 때 가족들은 완강히 반대했다. 십수 년 공직의 울타리 안에서 수사만 해온 터라, 내가 재야에 뛰어들어 제대로 헤쳐 나가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직으로 굳힌 내 마음을 누군들 되돌릴 수 없었다. 나는 그때 모든 걸 내려놓고 빈손으로 시작해야 하는 처지였다. 가족과 친지의 동정을 한 몸에 받는 신세였던 것이다. 나는 한숨으로 보내기보다는 담대한 도전 앞에 선 나를 다독였..

에세이 한 편 2023.11.05

신지식인 외 1편/ 조재형

신지식인 외 1편 조재형 나는 알고 있습니다. 목숨 한 그루 꺾는데 몇 발의 저주가 필요한지. 하지만, 나는 모릅니다. 기도를 사다리로 사용하면 신이 낮은 데로 임할 수 있는 줄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적의 심장을 초토화시키는 데 충분한 플류토늄의 양을. 하지만, 나는 모릅니다. 사계절을 지키는 민들레의 노란 전구를 누가 켜놓았는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말을 비수로 꽂으면 라이벌이 폭삭 무너지는지. 하지만, 나는 모릅니다. 숲속의 새들은 어디서 울음을 채워 오는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조명을 낮추고 어떻게 흥정을 붙여 노래방의 치마를 벗기는지. 하지만, 나는 모릅니다. 갈대가 어떻게 바람과 합치하여 가을 한 철을 저술하는지는. 나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겁박으로 무지한 의뢰인들의 지갑이..

에세이 한 편 2023.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