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261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7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7 정숙자 창문을 열면 포플러ᄀᆞ 보입니다. 맨 먼저 봄을 알리는 이, 가을의 최종을 알리는 이도 상냥한 잎파랑이의 저 포플러입니다. 봄, 여름 내내 그는 반짝임과 바람 소리로 매번 저의 상심한 시간을 치료해 주죠. ᄒᆞ지만 그에게도 겨울이 오면 목소리 잃은 인어처럼 말이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창문을 열고 ᄇᆞ라봅니다. 오랜 우정은 침묵 속의 언어를 알아듣는 까닭입니다. (1990. 8. 21.) _ 저에게 아직도 지구가 아름다운 까ᄃᆞᆰ은 사랑하는 사람이 살기 때문입니다 - 전문(p. 120) ------------ * 『문학과창작』 2022-겨울(176)호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5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5 정숙자 냇물이 들녘을 깨웁니다. 금빛/은빛 명멸하는 물별*들은 누구도 건져갈 수 없는 자음/모음들이죠. 행간엔 나비와 풀꽃, 풀무치와 메뚜기, 잠자리 소금쟁이 등 낯익은 기호들이 함께 살고요. 혹 얼음이 덮어버려도··· 어둠이 ᄊᆞᆨ 다 지워버려도··· 해 뜨면 새로이 반짝거리는 시+냇물은 태양의 휘호일까요? (1990.8.18.) # 2022. 8. 8. 가운데가 텅 빈 도넛형 시들 읽고, 읽고, 읽고 또 읽다 보면 가자, 가자, 두 눈 ᄄᆞᆨ 감고 가자 딜레탕트(dilettante)에 불과했던, 꿈과 미래였던 모던(modern)을 벗고 이슬 눈 글썽이는 쪽으로 가자 -전문(p. 69) * 물별: 물결이 햇빛을 반사할 때 생기는 섬광(필자의 신조어) -------------..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2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2 정숙자 몰랐던 바에야 그립지도 않았으련만 구태여 알고서 애끓는 마음이여! 저녁 새 지저귀는 슬픔 무렵을 유난한 침묵으로 마주하는 ᄇᆞᆷ. (1990. 8. 5.) 밭이랑 풀들이 말없이 뽑혀주듯이 비탈에 움튼 곡비哭婢들 깊은 발자국 저만치 뽑혀 나 갔 지 -전문 (p. 73) ------------------------- * 『文學 史學 哲學』 2022-가을(70)호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1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1 정숙자 별똥별 하나가 결심한 양 뛰어내립니다. 찰싹이는 파도를 베고 해안의 밤이 깊어갑니다. 저는 모래밭에 앉아 온갖 생각을 잊어버립니다. 하루뿐일지라도 이런 밤이 있음을 행복해ᄒᆞᆸ니다. 아까 떨어진 그 별똥별은 하늘이 제게 준 선물일까요? 저의 삶과 죽음 또ᄒᆞᆫ 어느 날 이 세상에 선물이 될 수 있기를 성심껏 기도하겠습니다. 덧붙여 제 삶과 최후 역시 아ᄁᆞ 그 별똥별처럼 공기 중에 소멸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빌겠습니다. (1990. 8. 4.) _ 삼십여 년 동안 저 표정 하나를 얻었습니다 구름이야 모를지라도 제 얼굴 어딘가에 들어있을 한 생각이란 바람=사람 사람이 바람이라는 경험 값, 바로 그것입니다 -전문 (p. 72) ------------------------..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4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4 정숙자 자고 깨면 자라는 풀잎에게는 자고 깨면 맺히는 이슬도 많지 내일은 어떤 바람 불지 몰라도 꽃받침 다듬느라 연이은 밤샘 자고 깨면 ᄇᆞᆲ히는 풀잎에게는 ᄌᆞ고 깨면 반가운 나비도 섧지 (1990. 6. 20.) 약질이었던 저를 아버지는 늘 꾸짖으셨죠. 더 먹어라 걸핏하면 울지 말아라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라 그러시면 더 울었던 제ᄀᆞ 어찌어찌 일흔을 먹었습니다. 젊은 ᄂᆞᆯ 객지에서 올렸던 편지와 같이 “저는 잘 있습니다. 제 걱정은 마세요.” 어느 하늘에 계시더라도···, 어느 달빛을 보시더라도···, ···, ···. -전문 (p. 143) --------------------- * 『시현실』 2022-가을(89)호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3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3 정숙자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 게 몸 굽히는 일인 줄 아기 난蘭은 몰랐습니다. 자라면 자랄수록 휘어지는 잎. 때 되면 곧게 일어선 줄기에서도 꽃만큼은 숙인 채 피우지 않았겠어요? 이곳에 와서 저는 많은 친구를 만났습니다만, 가장 ᄆᆞᆰ고 ᄄᆞ뜻한 벗으로는 마디게 ᄆᆞ디게 자라는 그였습니다. 잠시라도 를 잃을까 봐, 난초는 굳이 저에게 왔을 테지요? (1990. 8. 초.) _ 그때 사랑했던 난초들은 오래전 땅에 심어 줬습니다. 언제든 수명이 다할 텐데 분盆에 갇힌 채 그렇게 되리라는 게 미안했기 때문이지요. 잠시라도 대지에 서서 이슬과 바람, 햇빛과 어둠, 구름과 별들도 만나라고요. 오늘은 고유 번호 ‘No, 22-106’의 편지 ᄒᆞᆫ 통을 썼습니다. 이로써 저의 자정은..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0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0 정숙자 마지막 하나를 놓았을 때 그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었습니다. 한 줄기의 파도가 먼바다로 돌아가 무수한 흰 꽃을 몰아오듯이, 향기와 빛과 노래들이 텅 빈 해안을 감쌌습니다. 하나뿐인 하나를 잃는다는 건, 전혀 다른 또 하ᄂᆞ의 태양이 움트는 것이었습니다. (1990.7.26.) _ “페소아는 고향인 리스본에서 죽었다. 그의 죽음 후 친구들은 그의 방에서 커다란 궤짝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초고와 단상 27,543매가 들어있었다. 생전에 페소아는 무명의 작가였다.”(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 옮김 『불안의 서』, 2014. 봄날의책. p-799) “기나긴 연구작업 끝에, 마침내 페소아 사후 거의 50년이 흐른 1982년에야 최초로 포르투갈에서 『불안의 서..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15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15 정숙자 손가락 굵기의 푸른 벌레가 나뭇잎에 엎드려 있습니다. 유니콘의 뿔 머리에 달고 삶을 견디는 듯했습니다. 그 조용한 사색가가 호랑나비 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고로운 외모였어요. 그렇지만 제 귀에는 여신들의 바느질 소리가 들렸습니다. 꽂았다 뽑ᄋᆞᆻ다 수틀 가득히 무늬를 놓는 소리였지요. 그런데 그 어린이가 제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1990. 7. 20.) _ 90-91-92-93-94-95-96-97-98-99-2000//10 2001-02-03-04-05-06-07-08-09-2010// 10 2011-12-13-14-15-16-17-18-19-2020// 10 2021-(2022. 4. 19) 15:52-----------// 32 그랬군요 그렇군요 저 푸..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14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14 정숙자 풍경風磬은 참으로 싱그러운 악기입니다. 누가 맨 처음 바람을 불러 선사했을까요? 바람이 저토록 훌륭한 연주자인 줄을 안 그의 영혼엔 얼마나 많은 멜로디가 빛ᄂᆞ고 있었을까요? (1990. 7. 16.) _ 풍경을 켜는 미풍의 향기와 팔, 그리고 옷깃이 그립기야 하지만, 그 시공을 열람할 수 있는 기억만으로도 족하답니다. 여긴 지금 환경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다중우주(multibus)란 우주 어딘가에 있지 아니하고 바로 우리의 곁에도, 아프리카에도 나 자신의 뇌파 속에도 산란하고 존재하며 어렴풋이나마 파파파동이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홀로세 이전을, 살았던 입자이고, 그 너머의 시간도 살아갈 원자이며 어디선가는 현재도 살고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