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 ·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

序 ● 말 속에 담기는 정경의 미묘한 조화/ 서정주

검지 정숙자 2013. 4. 8. 21:19

 

 

       序․말 속에 담기는 情景의 미묘한 調和 / 서정주

        ―鄭淑子 詩集에 부쳐

 

 

    小雅 鄭淑子 女史의 詩集 <思慕>의 原稿를 읽으면서 나는 매우 神奇한 느낌과, 또 한쪽으론 오랜만에 옛 고향에 와 느끼는 것 같은 훈훈한 傳統的인 情味의 느낌을 同時에 가지게 되었다. 신기하다는 것은 이런 우리 겨레의 전통적인 정서를 역시 전통적인 超時代的 語風으로써 이렇게 詩로 다루고 있는 이가 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요, 고향에 온 것 같았다고 한 까닭은 그 超時代的 古典的 語風들이 博物館的인 것으로 전해져 오는 게 아니라 생생히 살아 작용하는 「永續語風」이랄까. 그런 잘 닦인 매력으로서 가슴과 피부에 간절히 닿아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냇물에 흔들리는 / 볕뉘들은 / 외로운 들에 내린 書翰이온지」같은 말 속에 담기는 情景의 미묘한 조화라든지, 「한낮 산 너머 백설구름은 / 어느 임이 안고 우는 꽃이옵니까」라든지, 「다시 일지 못하는 연기되어도 / 마음은 걷던 길에 두고 가오리. / 묻혀서도 뜨고 있을 思慕이기에」하는 구절이라든지, 「평생에 그리던 공후의 여운 / 얼어붙은 강 밑에 전해져 오고」라든지, 「혼잣손에 아기 안 듯 / 시름을 안고 / 다독이며 부르는 침묵의 노래」라든지, 「밤 있어 달 있고 해도 크려니 / 여닫으며 여닫으며 붉는 노을녘 / 뉘가 나눠 켜고 켜는 불이랍니까」하는 것에서나, 그의 詩의 방방곡곡에서는 우리가 현대생활의 번잡 속에 깡그리 잊고 지내던 그 고향적인 간절한 표현들이 머리를 들고 있는 것이 보여, 우리에게 현대라는 것을 따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民族史의 永遠」속에서만 靜觀케 하는 그 전통적 안목의 쪽으로 誘發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어떤 詩句에서 나는 「鶴友」라는 말을 발견했는데, 이런 말을 쓰는 시인은 그를 빼놓고는 현대의 이 지상엔 아무도 없는 걸로 안다. 鶴을 보고 ‘友’字를 붙여 친분 있는 친구로서 부르고 있는 사람은 고대의 神仙 속에서라면 모르지만 현대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좋은 習慣인 듯하여 이것을 여기 첨기해 두는 것이 다.

    끊임없는 精進만이 있기를 바란다.

 

                                                                            一九八八年 三月 冠岳山 蓬蒜山房에서

                                                                                                      未堂 徐 廷 柱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