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미신/ 신용목

검지 정숙자 2024. 4. 5. 01:42

 

    미신

 

    신용목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

 

  유령 역할을 맡은 배우는 자신의 육체를 없애야 했지. 멕베스를 연기하는 자가 멕베스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유령을 연기하는 자는 죽어야 했다. 그의 연기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무대의 어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이에

 

  그는 관객들의 생각 속에 무대를 차리고

  대사를 쳤다

  생각 속에서 연기를 했다. 지문으로 가득 찬 세계가 생각 속에 펼쳐지고

  생각이 무대가 된 관객들은

 

  아무도 극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생각 속에서 울고 생각 속에서 웃고 생각 속에서 소스라치느라 낮과 밤을 나누지 못했다. 그들의 삶이 모두 연극인 줄 몰랐다. 유령이 그들의 생각인 줄 몰랐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잊었다. 하나의 이야기에 가려져 다른 이야기가 지워진 이야기

 

  우리는 한꺼번에 신을 만나러 간다. 일요일마다 신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 비친 자신을 거울처럼 들여다본다. 하나의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면도를 하고 다른 거울 앞에서 다시

 

  자신의 얼굴을 한 자신이 자신을 부를 때, 자신의 욕망을 가진 자신이

  자신을 부린다

 

  면회가 끝나면

  구내식당 배식구처럼 뻥 뚫린 눈으로 바라본다. 천국에 간다는 사람들을 모조리 땅에 묻는 광경을

     -전문(p. 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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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년간 『미당문학』 2024-상반(17)호 <신작시> 에서

  * 신용목/ 2000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아무날의 도시』『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나의 끝 거창』『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 시간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