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늘의 사랑/ 정일근

검지 정숙자 2024. 4. 5. 02:11

 

    그늘의 사랑

 

     정일근

 

 

  커피벨트 고산지역의 아라비카 커피 열매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그림자 나무 아래서 명품의 맛이 든다

  이 나라 깊은 산 어느 그늘에 자란 산삼이 최고의 명약이 된다

  맹독 가진 뱀이 그늘에서는 유순해져 사람을 피해 간다

  보아라, 꽃은 그늘에서 향기를 만들고 볕 아래서 시든다

  시인이여, 너 또한 꽃 지는 그늘에서 시를 만나지 않았는가

  우리 입맞춤이 그늘에서 가장 뜨거웠던 법이니

  정수리가 서늘해지는 그늘의 사랑이 있고 그 그늘에서 열매가 달게 익는다

  너는 뼈 익고 살타는 햇볕 속을 걸어가면서 적의 없이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볕이 그늘을 만든다, 그늘은 볕이 주는 선물이니 절하며 감사하며 받아라

     -전문(p.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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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년간 『미당문학』 2024-상반기(17)호 <신작시> 에서

  * 정일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바다가 보이는 교회』『경주 남산』『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소금 성자』『혀꽃의 사랑법』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