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정초 생각/ 곽진구

검지 정숙자 2024. 4. 5. 01:22

 

    정초 생각

 

    곽진구 

 

 

  누가 봐도 잘 될 리 없는 상황이지만

  모든 게 잘 될 거라며

  당신이 왔다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귀를 둥글게 말은 쥐토끼처럼 귀를

  둥글게 말은 당신은

  정월 초하루 내 집 마당에 발을 내려놓으며

  선몽善夢을 복조리에 담아 방문 앞에 걸어 놓는다

  선단仙丹을 주는 것이리라, 적어도 나에겐

  그래서 나는 하늘을 훨훨 나는 꿈을 꿀 것이다

  겨드랑이가 가려울 것이다

  아마도 하늘을 날아봐, 날아봐,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허무맹랑한 날개가 만져질 것이다

  허망하게 들릴지 몰라도

  하늘로 뛰어올라 별들 사이를 무장무장 유영할 것이다

  당분간 지구론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그냥 그곳에서 소리소문 없이 살 것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당신이 계신 별로 사라질 것이다, 것이다 문득

 

  큰절 올리는

  조상님 앞에서 별안간

    -전문(p.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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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년간 『미당문학』 2024-상반기(17)호 <신작시> 에서

  * 곽진구/ 1988년『예술계』로 시 부문 & 1994년 『월간문학』으로 동화 부문 등단, 시집 『사는 연습』『그 말이 아름답다』사람의 집『꽃에게 보내는 엽신葉信『시의 소굴』『혼자 웃다, 동화집『빨간부리뻐꾸기』『아빠의 비밀』『엄마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