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니르바나/ 정숙자 나의 니르바나 정숙자 화엄경 첫 장만한 우리 집 거실에서 의자 깊숙이 구겨져 묻힌, 나는 몇 십 년 뒤적거린 사고의 무덤이다 일 년에 한 번쯤 흙 돋우고 더러더러 잡풀 줄거리 들추어내는 그쯤으로 나는 무덤을 돌본다 잔디 뿌리와 머나먼 하늘 사이, 모처럼 정화된 시간이󰡒�..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23
한 바퀴/ 정숙자 한 바퀴 정숙자 발이 머리로 들어온다 우울한 발은 머리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안개에 질리고, 바람에 막히고, 소신만이 푸른 발 사유 속으로 진입한 발은 하늘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신발이 닳지 않는다 길을 재지도 않는다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린다 발이 창공으로 날아간 ..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23
평균풍속/ 정숙자 평균풍속 정숙자 나무가 풀을 먹는 걸 보았다 너른 그늘 속에 자디잔 이빨을 숨기고 있는 걸 보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꽃밭 커다란 사과나무가 풀뿌리들을 씹는 소리가 났다 내 신발 문수가 더 커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 휘영청 밝은 달은 얼마나 많은 근동의 별을 먹었을까 ..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