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
정숙자
발이 머리로 들어온다
우울한 발은 머리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안개에 질리고, 바람에 막히고, 소신만이 푸른 발
사유 속으로 진입한 발은 하늘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신발이 닳지 않는다
길을 재지도 않는다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린다
발이 창공으로 날아간 순간 길은 원시림으로 돌아간다
온 만큼만 돌아가면 태초다
길에서 발이 여문다
벗어남/체념/전락이라고 짚어도 좋다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고독 속에서 한 순배 익어 가는 발
지나온 시간들이 압축된다
다시 씨앗이다
꽃을 지닌 떡잎이 지상으로 뻗어나간다
-『문학과의식』200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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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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