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한 바퀴/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9. 23. 21:00

 

 

   한 바퀴

 

   정숙자



  발이 머리로 들어온다

  우울한 발은 머리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안개에 질리고, 바람에 막히고, 소신만이 푸른 발

  사유 속으로 진입한 발은 하늘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신발이 닳지 않는다

  길을 재지도 않는다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린다                  

  발이 창공으로 날아간 순간 길은 원시림으로 돌아간다

  온 만큼만 돌아가면 태초다

  길에서 발이 여문다

  벗어남/체념/전락이라고 짚어도 좋다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고독 속에서 한 순배 익어 가는 발

  지나온 시간들이 압축된다

  다시 씨앗이다    

                 

  꽃을 지닌 떡잎이 지상으로 뻗어나간다 
    -문학과의식200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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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