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산문집 · 밝은음자리표

사계 - 가을

검지 정숙자 2010. 10. 22. 01:41


          사계/가을

 

           정숙자

                                                    


   가을은 달빛의 계절이다. 자칫 쨍그랑 소리를 내며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초승달에서부터 온 들녘을 비추고도 남아도는 만월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루 수려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벼 포기와 사과알들이 여름철 태양을 가로지를 때 함께 땀 흘리며 여물었던 것일까. 가을 달을 품고 흐르는 물은 더 맑은 소리를 내고, 그 정갈한 노래에 씻긴 우리의 귀는 어느덧 격조했던 순수와 만나게 된다. 나에게 가을이 지닌 명사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달’일 것이다. 그리운 이와 나누고 싶은 시간도 달밤이라고 대답하리라. 그곳이 도심이 아닌 풀벌레 울어주는 외곽이라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리오. 달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고운 눈이고 이름 없는 사람에게도 부드러운 손길이며 야심 등등한 사람에게도 자애로운 경전이다.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웃어주는 달. 그는 그렇게나 여여로운 존재이기에 제아무리 갑부라 해도 자기만의 정원에 가둘 수 없고 태산을 옮기는 권력자라도 단 한순간 발아래 꿇릴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나와 같이 허한 여자에게도 흉금 없는 벗이며 영원한 희망이다. 


   “별은 아주 멀리 있다. 언덕이나 나무 위로 올라가도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구름은 우리와 별 사이를 지나간다. 별은 확실히 구름 뒤에 있다. 달은 천천히 움직이며 별 앞으로 지나가지만, 나중에 보면 별이 다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달은 별을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별들은 분명히 달 뒤에 있다. 별들은 반짝인다. 그들은 기묘하고 차가우며, 멀리 떨어져 있는 빛이다. 많기도 하다. 온 하늘에 널려 있다. 하지만 밤에만 하늘에 나타난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칼 세이건,『코스모스』「밤하늘의 등뼈」에서


   이 글은 시는 아니지만 혼자 읽기 아까운 문단이기에 여기 적는다. 칼 세이건은 NASA의 자문 위원으로 보이저, 바이킹 등 무인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했고 과학의 대중화에도 노력을 기울여 세계적인 지성으로 주목 받았다. 인문학 학사, 물리학 석사,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박사였으며 의과대학 유전학 조교수, 우주과학 교수, 행성 연구소 소장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소개는 이하 생략이 타당할 듯하므로 이만 멈추기로 한다. 『코스모스』에 내가 이토록 매혹된 까닭은 저자의 박학다식만이 아니라 따뜻하고 섬세한 문체와 학문에 대한 성실성, 그리고 풍부한 시심 때문이었다. 읽는 동안의 일이었지만 무게가 2.28kg이나 되는 『코스모스』를 나는 어디든 들고 다녔다. 핸드백 외에 또 하나의 가방을 챙기는 일도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마만큼 『코스모스』는 단순한 책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깊고 넓고 향기로운 우주이며 꽃이었다. 크라운판으로 6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펼칠 때마다 지은이는 물론 역자에게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 드렸다. 빈번한 밑줄 사이사이에 뿔 돋친 별도 자주 그려 넣었다. “달은 별을 먹지 않는다”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구태여 시라고 구획하지 않은 시문과 인간미가 여느 시집에서보다도 찬란히 빛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 행복한 달은 어디서 귀가 떨어졌을까. 고통스런 현실을 안고 혼자 바라보는 달빛은 얼마나 슬프고 요요한가. 그 비탈에서 내다보는 겨울 하늘은 얼마나 더 쓸쓸하고 눈물겨운가. 외로운 한 철을 위해 신은 우리에게 사랑과 우정을 선사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계절인들 아픔이 없으리요만, 유독 가을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그리운 것은 달빛이 너무나도 맑고 황홀해서이리라. 


   달빛만이 달빛인 건 아닐 것이다. 햇빛 아래 슬픔은 모두 달빛이다. 몇 해 전 나는 고비사막을 지나 명사산에 간 적이 있다. 모래빛 산봉우리를 제 등뼈 위에 올려놓은 낙타와 고삐잡이 소녀가 요새도 가끔 떠오른다. 생계가 급한 그들은 작열하는 태양과 흙먼지를 장애로 여길 수조차 없는 듯했다. 소녀는 낙타를, 낙타는 소녀를 의지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황폐와 삭막만이 고도(古都)였음을 증명해주는 사막의 끝자락에서 나도 낙타 등허리에 높직이 올라앉아 단체 여행의 프로그램에 충실했다. 그러나 신명나야 할 낙타타기가 ‘룰랄라’는 고사하고 참담에 빠져들었다. 고삐잡이 소녀가 다리 긴 낙타의 뜀박질에 맞춰 헉헉 달려야 했던 것이다. 낙타와 소녀의 기진맥진 위에서 나 홀로 ‘브라보’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낙타와 소녀 중 누가 더 슬픈 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 또한 여자인 탓이었을까? 머지않아 여자가 되고, 여성이 되고, 여인이 될 소녀의 운명이 내 마음에 애잔히 비쳐들었다. 21세기의 낙타는, 대상들이 줄을 잇던 실크로드의 영광도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배하러 떠났던 동방박사의 경건과도 거리가 멀었다. 생존과 씨름하는 그들은 또 한 알의 모래, 또 한 올의 바람, 또 한 점의 가느다란 낮달이었다. 그들의 눈자위에서 나는 가장 슬픈 달을 보았다. 난생처음 적금 깨어 출발한 해외여행이 어처구니없는 사치이자 고행으로 체크되었다. 구석구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혹은 그보다도 못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인가. 낙타에서 내렸을 때 나는 소녀를 포옹해 주었다. 연민과 사랑, 축복을 담아 “행복하세요!”라고 말해 주었다. 바로 그때 소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행복하세요!”라고. 이국의 말, 뜻도 몰랐을 그 말을 뭔가 좋은 의미일 거라고 믿어 발음해 보았을 것이다. 너무나도 빨리 되돌려 받은 선물에 나는 몇 곱절의 감동과 행복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척박한 땅을 기억할 때면 번번히 눈썹 밑 달빛이 이지러진다.


   나는 달을 사랑한다. 반달을 사랑하고, 배가 나오기 시작한 열하루 무렵 우활꼴의 달을 사랑한다. 나뭇가지에 걸린 달과 강물 아래 헤엄치는 달, 고향집 우물물 속에 향긋한 맛 베풀어주던 보름달을 사랑한다. 나는 그믐달을 사랑한다. 내 어린 날의 지붕 위에서, 사춘기 적 절망 안에서 긍정을 가르쳐 주던 황금빛 달을 사랑한다. 어머니 아버지 자매들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이던 꼬부랑달을 사랑한다. 내 연인의 속손톱 한 잎, 그렇게 희고 따뜻하고 변함없는 달. 한 잎 한 잎 쌓인 달빛을 나는 오늘도 내일도 사랑한다. 가시광선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검정색 달조차 사랑한다. 줄어들고 커지고 끝없이 아픈 그 모든 달들을 나는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김나현은 내가 아는 어린이 중 가장 작은 꼬마다. 현재 네 살이지만 세 살이었던 지난 해 가을. 나는 나현 엄마의 제주도 길에 나현의 도우미 자격으로 따라 갔었다. 휴식이나 즐거움을 위한 길이 아니라 나현 엄마에게 용무가 있었기에 낭만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잠시 사족을 끼우자면 나는 웬만한 풍경에는 동요/압도되지 않으며 호기심도 없는 편이다. 남편이 군인이었기에 긴 세월 동안 바닷가로 산골짜기로 이사 다니며 너무 많은 절경을 보아버린 탓이리라. 손꼽히는 명소인들 4원소로 이루어진 지표 아닌가. 좀더 높거나 깊거나 넓거나 푸르거나 희한하거나 그런 차이에 불과할 터이므로, 일월성신이야 어디서 보거나 매한가지이므로 우리의 내면에 맺힌 한(恨)과 너그러움, 열정에 비하면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닌 것이다. 어떤 지형이든 지극한 휴먼 스토리가 가미되어야 역사와 신이가 추가되는 법. 내 의식의 진행이 이와 같았으니 나현을 돌보는 일 말고는 제주에 대한 관심은 무심에 가까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라산 정기를 실감할 만한 한 토막 대화가 벌어졌다.   


   나현 엄마와 나는 굳이 폭신한 침대방을 비워 두고 재래식 이불이 깔린 방에서 자기로 했다. 바다 쪽으로 난 그 방만이 유리창 가득 열이레 달빛을 영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깨끗한 이부자리에 몸을 묻은 채 달을 바라보는 게 얼마만이었을까. 백일몽의 복숭아나무 아래서나 누렸던 호사는 아니었을까. 나현 엄마와 나는 달빛을 더 잘 감상하기 위해 실내의 전기 스위치를 모두 내렸다. 아직 잠들지 않고 팔베개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나현에게 나는 달을 가리키며 말을 걸었다.

   “저게 뭘까?”

   “달.”

   “어머! 우리 나현이가 달도 알아?”

   “응. 저건 달이야.”

   “참 예쁘지?”

   “응. 근데 달이 왜 방으로 들어왔어?”

   “저 달이~ 나현이 거니까. 나현이 거니까 나현이 방으로 들어왔지. 함께 자려고….”

   “그래? 함께 자려고? 나현이 거니까?”     

   “응~ 나현이 거 아니면 나현이 방으로 안 들어오지.”

   “나현이가~ 달 몇 갠가 세어 볼까?”

   “그래 세어봐.”

   “다섯 개야.”

   “어? 그렇게 많아? 한 개가 아니고?”

   “응. 다섯 개야”

   나현은 그 조그만 팔을 위로 뻗치고는 한쪽 손가락으로 다른 쪽 손가락을 하나하나 세어 보이며 세 살배기 특유의 서툰 발음으로 말을 이었다.

   “이더케 다섯 개야. 나현이 손가닥처덤.“

   난시일까? 찰나적인 의문이 일었지만 내 눈에도 달 가장자리가 어른어른 겹쳐 보인다는 점을 깨우치고는 이내 안심되었다. 나현이 어스름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달 나눠 줄까?”

   “그래? 달을 나눠줄 수 있어? 몇 개 줄 건데?”

   “세 개.”

   “그렇게나 많이?”

   “응. 세 개 줄게.”

   “고마워~ 우리 착한 나현이! 세 개나 주는 거야?”

   “응. 나현이 거니까.”

   나현은 내 손에 달을 쥐어주며 몹시 좋아했다. 세 개를 덜어냈어도 여전히 다섯 개가 남아 있는 현상쯤은 아무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왜 다섯 개가 그대로 남아 있지?” 라는 나의 질문에, 나현은 “원래 그래”라고 간단히 답했던 것이다. 달을 선물한 나현도, 달을 선물 받은 나도, 그 시간과 배경이 되어준 나현 엄마도 측량키 어려운 기쁨 속에서 도란도란거리다가 제각기 자신의 달을 품고 천국의 입구에서 잠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행복은 우연히 찾아오지도 끌려오지도 않는다. 스스로 파종한 언행들의 결실이 행불행이라고 나는 믿는다. 즉석에서 돌려받는 쪼가리 웃음조차도 내가 먼저 따뜻이 건네었을 때 훈훈하게 살아난다. 고삐잡이 소녀한테서 받은 <행복>도, 나현으로부터 받은 <세 개의 달>도 주고받음의 순환 속에서 이루어진 결정은 아니었을까. 나는 결코 부자도 아닌데다가 별이 되지도 못한 시인이다.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거라곤 마음 하나뿐, 그러므로 타인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도 마음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시기심 없는 우정과 이기심 없는 사랑이 무엇보다 귀하고 반갑고 또한 소중하다. 

   

   땅바닥으로 끌어내려진 달!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자가 ‘달이 별들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구슬리다니! 그것은 필시 약자를 보호해 주고 싶은 측은지정의 발로였을 것이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칼 세이건(1934-1996)은 짓밟히고 먹히는 현실을 무수히 경험했으리라. 숱한 고뇌를 달빛에 새겼으리라. 그 비애와 분노의 집적이 없고서야 어찌 달을 ‘먹이사슬의 고리를 잇는 구멍, 즉 입’으로 환치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는 그가 가장 평화로운 별자리에 머물기를 바란다. 지구를 기억해 주기 바라고, 우리에게 부족한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주기 바란다. 나현이 어른 되었을 때는 사막에도 초록색이 돌아왔기를, 누군가의 눈물을 담보하지 않고도 달빛이 꽉꽉 차오르기를, 고삐잡이 소녀의 딸들은 귀부인이 되었기를 바란다.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빛을 보태주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거친 세태를 박물관에서나 구경하게 됐으면, 하고 바란다.

 

  * <리토피아> 2006-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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