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천재
정숙자
천재의 연원은 무엇인가, 혹은 어디인가. 천재는 과연 선천적인가, 또는 후천적인가. 미시적/거시적 세계에 눈을 둔 예술가라면 이 명제 앞에서 한 번쯤 멈추어 보았으리라. 자신은 천재인가, 자신에게도 천재가 잠재하는가, 잠재한다면 몇 퍼센트의 천재가 작용하고 있는가. 장차 천재가 자신을 어둠으로부터 꺼내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천재를 이끌어내야 할 것인가 등등 다양한 의문에 봉착할 수도 있으리라. 왜냐하면 예술가에게 있어 천재성이란 생명을 좌우하는 상상력이며, 작품으로 표출되고 검증되는 독창성의 회로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앞바퀴는 늘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는 몇몇 천재들에 의해 굴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의 고독에는 피가 묻는다. 어째서일까?
"―어이! 어이!"나는 그에게 올라오라고 외쳤다. 그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내 방은 칠 층에 있고 계단이 매우 좁으므로, 유리 장수가 꽤 힘들 것이며, 그 부서지기 쉬운 상품의 모서리를 여기저기 부딪치리라는 생각에 고소해했다.
이윽고 그가 나타났다. 나는 유리를 모조리 살펴본 후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색유리는 없구먼? 장밋빛이며, 붉은 것, 푸른 것, 마술의 유리, 천국의 유리는 말야? 이런 뻔뻔스러운 사람 보았나! 이런 빈민굴을 버젓이 돌아다니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유리 한 장 안 갖고 다니다니!" 그러고는 층층대 쪽으로 왈칵 떠밀자, 그는 비트적거리며 투덜거렸다.
나는 발코니에 다가가 조그만 화분을 집어, 사나이가 현관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유리 지게 위에 수직으로 떨어뜨렸다. 그는 그만 나둥그러지고, 가엾게도 전 재산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벼락에 부서지는 수정궁(水晶宮)의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나는 내 미친 지랄에 취하여 그를 향해 부르짖었다. "인생은 아름다워야지! 인생은 아름다워야지!"
이토록 신경질적인 장난에는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며, 흔히 비싼 값을 치르는 수가 많다. 그러나 일순간 속에 무한한 쾌락을 맛본 자에게 영원한 벌이 무슨 상관이랴?
-『빠리의 우울』중에서 '못된 유리 장수' 부분-
이 시를 지은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1821~1867)는 프랑스 시인이며 비평가다. 그가 태어나던 해 아버지는 62세, 어머니는 28세였으므로 무려 34년의 연령 차이가 났다. 이는 우생학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고 한다. 보들레르의 극도로 날카로운 감수성, 병적인 성격은 그런 불균형의 결합에서 빚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러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이었다. 어머니가 완전히 자기만의 것이 되었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그렇지만 어린 보들레르의 천국은 일년 안팎에 끝장이 나고 말았다. 어머니가 재혼을 한 것이었다. 보들레르의 비극은 그때부터였다. 낙원에서의 추방, 추락감, 심적 분열이 그로 인해 싹텄다는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언제나 어머니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오직 저만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우상이자 친구였습니다." 그의 연보는 '1871년, 사후4년 어머니 사망'으로 종결되어 있다.
불행했던 천재 보들레르, 그의 생애에서 연애는 빠뜨릴 수 없는 삶이었다. 그는 리옹의 왕립 중학, 빠리의 르 그랑 중학에서 퇴학을 당했고,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한 뒤 법률학교에 등록했지만, 방종한 생활을 하다가 매독에까지 감염되었다. 혼혈인 단역 여배우와 정열적인 사랑에 빠졌으며, 사교계의 순결한 부인과도 연애하였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참다운 사랑을 받아본 일도, 바쳐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24세 때 이미 자살을 기도했던 그는 46세에 반신불수와 실어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영원히 먼 곳으로 날아갔다. 천재의 풍부하고도 예리한 감수성이 천재적 고통 외에 뭐란 말인가.
이탈리아의 사상가 체자레 롬브로조는 『천재론』에서 ‘천재와 능재’의 차이를 규명하였다. 즉 난해한 수학문제를 잘 풀거나 백과사전을 모조리 외운다 해도 그는 능재에 속할 뿐 천재가 아니며, 천재는 오로지 창작에 의해서만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 논지에 의하면 모든 문학작품에는 천재가 들어 있다는 결론이다. 다만 얼마만큼의 천재가 함유되었는가에 따라 작가와 작품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누가 천재인가에 대해서는 관심할 바 아니다. 누가 천재성을 더 발휘하는가, 만이 천재인가 아닌가를 판가름 낸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천재성의 발휘는 하늘의 부여가 아닌 인간의 몫일 것이다. 천재성은 결코 선험되지 않는다. 매 작품은 노력에 의한 일회적 경험/체현이며 천재성의 성장 또한 노력의 집적이다. 흔히 상상력을 영감(靈感)이라고 말하지만 그 신기루도 노력에 의해 개발되고 확장되는 불꽃이리라.
천재는 결국 스스로의 불길에 데이고 분신하는 존재다. 외곬으로 집착/천착하다보면 그 영혼의 깊이와 높이에 묻혀 평범을 잃어버린다. 그 영적인 지시 행위를 광기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회 일반의 평면적 발상이다. 그것은 광기가 아니라 천재가 분출되는 정상적 과정임을 이해해야 한다. 즉 기준치를 넘어선 감성 자체를 풍부한 감성이라고 일컫지만 타인보다 열 배, 백 배 입체적이고도 풍부한 감성이야말로 천 배, 만 배의 우울과 고독 고통 환희 등을 유발하는 블랙홀이다. 보들레르의 천재성 역시 암흑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아니었을까.
이야기.1≫보들레르의 천재적 자장에 감전될 무렵 나는 충북 증평읍에 살고 있었다. 군인가족이었으므로 객지로- 객지로- 떠도는 생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비좁은 아파트나마 관사가 있어 셋방살이를 면했던 이십여 년 전. 현관문에 <사색中>이라는 표찰을 붙여 놓았던 시절을 더듬어 본다.
당시 군인가족은 너나없이 외로움의 채무자였다. 갚아도- 갚아도- 청산되지 않는 그 외로움을 이웃과 의지할 밖에 딴 도리라곤 없었다. 교통․통신․문화시설이 오늘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미진했으므로 부인들은 대부분 여유사행의 미덕을 쌓으며 내조에 공을 들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 어느 날 나타난 철새 하나가 <사색中>이라는 금줄을 내걸었으니 그에 대한 소문이 먹구름일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물론 나에 대한 공담(空談)을 예견하는 건 유쾌한 심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하늘을 가슴에 품은 나로서는 그 길만이 용맹이요 정진이었다. 남편이 바깥에서 작전업무에 여념 없을 때, 나는 자신과 다투었던 것이다. <사색中>을 내거는 일은 분명 외부와의 접전이 아니라 자아와의 정쟁이었다. 집안일을 도맡다보면 정작 자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란 자투리에 불과하다. 그런 틈새 시간을 이웃과 더불어 한담으로 써버린다면 글월문자의 문향은 금세 문을 닫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웃을 도외시한 건 아니었다. 오후 네 시에서 다섯 시까지는 반드시 <사색中>을 걷어두었다. 또한 <사색中>의 이면에는 다른 뜻도 숨어 있었으니 ‘집안에 사람이 있음’을 알려 긴급한 방문자일 경우 허탕 치지 않게끔 배려함이었다. 만일 이웃이 안중에 없었다면 <외출中>이라고 써 붙였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의 <사색中>은 고민- 고민- 끝에 발굴한 묘안이었으며 가로7㎝, 세로3.5㎝ 짜리 종이 현판이었다.
이웃들은 오래지 않아 내 시간에 맞춰 내방하였다. 비 오는 하오(下午)나 눈 내리는 밤, 고즈넉한 석양녘이면 우아한 모습으로 들러주었고, 그때마다 몇 권의 책이 꽂힌 내 됫박방은 소박한 살롱이 되고는 했다. 형광등을 꺼버리고 달빛만을 향수하였는가 하면, 촛불을 바라보며 삶을 아파하기도 했고, 어느 땐가는 한 부인의 청에 의하여 각촉부시(刻燭賦詩)를 겨루기도 했다. 미풍만 불어와도 해조음을 내던 창 밖 포플러! 그 때 그 부인들이 그 잎새소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포플러 자신은 그 점을 알고나 있었는지 다시금 보고 싶어진다.
코팅된 손글씨 위쪽에 한 개의 구멍을 뚫고 실끈을 단 <사색中>을 나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사색中> 외에도 <산책中> <밭> <앞냇물> <뒷냇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교에서 돌아온 두 어린것이 뛰어올 수 있도록 준비한 알림표들이었다. 좀 전에 서랍을 열어보니 문제의 <사색中>과, <취침中> <열쇠관리실> 만이 남아 있다.
타고난 재주가 미미할수록 무한 배수로 노력해야함은 당연한 일. 간혹 이웃을 피해 냇물 휘어진 숲에 들어앉아 책장을 넘기던 과거는 지금껏 하늘과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시간 욕심으로 인해 나는 귀한 벗들을 많이 놓쳤다, 아니 지금도 놓치고 있다. 이 점 또한 참회하고 떠나야 할 항목 중 하나다.
이야기.2》이 역시 증평읍 남하리 군인아파트가 배경이다. 부대장은 이웃간의 친목과 경제․건강․여가선용에도 보탬을 주고자 몇 평씩의 밭을 분배하였다. 똑같은 크기로 정리된 밭에 아파트 동호수의 팻말이 세워졌다. 배추든 파뿌리든 무엇이라도 파종할 수 있었다. 나는 뇌 속에 온갖 것을 초고속으로 경작해보고는 밭을 삼등분했고 고구마/콩 그리고 한쪽에는 해바라기와 장미를 심었다. 가을에는 품평하여 상까지 내린다는 소식에 모두들 열심이었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아침이면 온 가족이 물주고 풀 뽑는 광경 또한 장관이었다. 내 집 우두머리만이 만추가 되도록 밭 귀퉁이에 그림자 한 번 들여놓은 바 없었으니 이유를 꼽자면 늦잠, 아니면 소재의 증발이었다. 키 큰 해바라기와 장미가 내 동심초였음을 뉘라서 헤아릴 수 있었으리요. 그 밭과 구름은 지표(地表)가 아니라 내 마음의 메타포였던 것이다.
그러잖아도 이미 <사색中>으로 낙인찍힌 내가 밭 가운데 꽃나무를 심었으니 과연 이상하게도 보였을라! 어쨌든 나는 틈틈이 콩밭도 매고 고구마 순을 추어주었으며 밭두둑에 앉아 쉬기도 했다. 맨발로 호미질을 하고 나서 싸들고 온 커피를 마실라치면 대지는 그대로 다탁이었다. '못된 유리 장수'가 가져오지 않았던 색유리도 하늘 가득 쌓여 있었다.
어느 날. 그 아름다운 색유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보다 훨씬 젊은 부인이 옆에 와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왜 밭에다 꽃나무를 심었능교?” 나는 “눈으로도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부인은 “괴짭니더!”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웃었다. 해바라기와 장미꽃 웃음꽃 향기가 시간을 가로질러 이 원고지에까지 배어든다. 품평회에서의 꼴등은 내 차지였지만, 봄여름가을 내내 쾌락을 맛본 나에게 그런 등위가 무슨 상관이었으랴.
천재냐, 노력이냐를 묻는 것은 뫼비우스 띠에서 처음과 끝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타고난 천재일지라도 노력이 합쳐지지 않으면 범인에 머무를 것이며, 작금에 이름을 드날리는 작가일지라도 작품이 허술하다면 세월은 고사하고 옆 마을에서도 그 문장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천재는 결코 노력을 결여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천재란 노력가이며, 노력의 힘은 집요하고 거칠어 여타의 환경을 문제 삼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많은 천재들은 그와 같은 돌파력으로 자기를 연구했다. 펼쳐야 할 가지와 잎새, 꽃과 기둥, 열매와 창공이 바로 자기라는 씨앗 안에 내장되어 있으니 말이다. 만 권의 책을 독파하고 외우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예술에 도움을 주는 영양소일 뿐, 단 한 구절도 자신의 것일 수는 없다. 그러나 영양 공급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노력→천재성→작품으로 이어지는 경로에서 시간의 확보는 절대적이다.
예컨대 시간 앞에 야수가 되지 않았던 천재는 없다. 산책 나온 칸트를 바라보며 아낙네들은 시계를 맞추었고, 카프카는 “손님은 필요치 않다”고 공언했으며, 버나드 쇼오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없다”고 내쫓았다. 분기탱천한 방문객이 “당신이 바로 버나드 쇼오가 아니오?”라고 내뱉자 “본인이 없다는데 무슨 대답이 더 필요하오?”라고 느긋이 대꾸했다는 것이다. 이런 전례들을 비추어볼 때 나의 <사색中>은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꾀죄죄하다. 그러기에 여태 요만한가 싶기도 하다.
보들레르가 떠민 유리 장수는, 보들레르에게 행복을 팔지 않은 신(神)이었으리라.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뿐인 유리를 신 앞에 내동댕이쳤으리라. 그리고 그는 우울과 고독으로 점철된 생애를 녹여 깨지지 않는 색유리를 만들었고, 그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했다. 그는 천재와 시세계를 여닫는 또 하나의 시간이며 창이다. 중절모나 비껴쓰고 양반걸음으로 천재연하며, 물리적으로 나약한 시인들에게 슬픈 웃음을 머금게 하는 우리 주변의 단재(短才)와는 다르다. 지적 균형을 완벽하게 갖춘 천재도 있다고 롬브로조는 천명하였다. 작품은 물론이려니와 타인의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인간형 천재를 나는 그리워하고 기다리며 또한 찾는다.
*『애지』2004-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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