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음자리표』표4
-본문「시와 철학」에서
실로 나비의 아름다움은 그 정신에 있다. 날개를 얻기까지의 인내가 그렇고, 겸손이 그러하다. 나비는 날개를 얻었을지라도 창공을 원하지 않으므로 허욕이 없다. 벌레였을 적에 기어다니던 꽃밭을 떠나지 않고, 꽃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점으로 보아 배신도 없다. 소리를 내어 떠들지 않으니 과시가 없으며, 배불리 먹거나 끼니를 저장하지 않으니 또한 탐냄이 없다. 곤충학자의 말에 의하면 나비는 성충이 된 뒤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벼운 간식 정도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비는 날개가 있으되 벌처럼 누군가를 쏘아댈 침이나 뿔도 소유치 않으므로 무저항주의자요, 새들이 가진 부리나 발톱도 없으니 살생이 없다. 어디를 살펴보아도 모난 구석이라곤 없다. 그 모든 없음 속에서 나는 그들의 진정한 미와 신의를 발견한다. 그들이 곧 성(聖)이며 선(仙)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날고 있는 이 세상이니만큼 그들을 닮은 사람들 역시 곳곳에 살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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