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박순원_ 시를 살아가는 시인(발췌)/ 반성 740 : 김영승

검지 정숙자 2022. 4. 10. 00:30

<권두 에세이> 中

 

    반성 740

 

    김영승

 

 

  어둠  컴컴한 골목

  구멍가게 평상 위에 난짝 올라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옛날 돈 2만 원 때문에

  쫓아다니면서 내 따귀를 갈기던

  그 할머니가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뛰어와

  내 손을 잡고 운다

 

  머리가 홀랑 빠졌고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맥주까지 마시니 돈 좀 생겨지나 보지 하면서

  웃는다

 

  이따가 다른 친구가 올 거예요 하면서

  나도 웃었다

    - 전문, 『반성』

 

   시를 살아가는 시인(발췌) _ 박순원/ 시인

  실제 있었던 일인지, 꾸며 낸 것인지, 아니면 실제 있었던 일을 살짝 각색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시를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내 방식대로 기억하고 있어서 "쫓아다니면서 내 따귀를 갈기던" 부분은 이번에 새로 읽으면서 좀 낯설었다. 몇 번 읽으면서도 그 부분은 그냥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그냥 성가시게 구신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내 기억 속에서보다 실제로는 더 극성스러우셨나 보다. 아무튼 나는 이 시를 처음 읽은 후, 가끔 이 시의 장면을 떠올리며 혼자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 시를 대본 삼아서 머릿속으로 그때그때 다른 콘티를 만들어 보곤 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손을 훠이훠이 내저으며 반갑게 다가오는 연기야 웬만한 연기력만 있으면 클리셰에 가깝지만, 마지막 구절 "나도 웃었다"에서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 웃을 때 손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내 손이 오그라들었다. 지금도 타이핑을 하던 내 두 손이 컴퓨터 자판 위에서 오그라들고 있다. 이 시가 좋은 시인지 아닌지, 김영승 시의 특징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등등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김영승 시인을 생각하면 늘 이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 p. 시 9-10/ 론 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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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파란』 2022-봄(24)호 / <권두 essay> 에서

  * 박순원/ 충북 청주 출생, 2005년『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주먹이 운다』『그런데, 그런데』『에르고스테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