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팬데믹 이후 시의 길을 생각한다(부분)/ 이성혁

검지 정숙자 2022. 4. 6. 15:25

<권두언> 中

 

    팬데믹 이후  시의 길을 생각한다(부분)

 

    이성혁/ 문학평론가

 

 

  팬데믹 종료가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인류는 그 종료 이후를 사유하고 계획해야 할 시점이다. 그것은 인류 문명, 특히 현대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한 예로 현대 문명을 세운 인간중심주의 사상에 대해서 반성해야 한다는 점을 말할 수 있겠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친화적인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둘 사이에 적대나 한쪽의 종속이 아닌 공존의 방식을 생각해내야 하고 그 가능성을 실험해 봐야 한다. 그래서 인류는 시인의 자세를 가지려고 해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시인은 "한 알의 모래알에서 우주를 보는"(블레이크) 상상력을 가진 사람 아니었던가. 시인의 상상력은 생명, 나아가 사물 하나하나까지도 소중히 생각하는 이다. 물활론으로 사유하는 사람들, 생명과 사물의 세계을 업신여기지 않고 그것들과도 끊임없이 교호하고자 하는 이가 시인인 것이다. 팬데믹 이후 인류는 시인을 따라 인간중심주의의 오만에서 벗어나 사물이 세계와 새로이 관계를 맺고자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를 둘러싼 우주에 경외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학인들은 사람들이 시에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해야 하리라. 

  시의 편에서 보자면, 현 상황에서 시인에게는 더욱 우주적인 상상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 아닐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 저 밤하늘의 성운까지 이르는 진폭을 가지는 상상력이다. 시인에게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시적 대상이다. 이와 함께 현대 문명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리얼리즘과 낭만주의의 결합이 요구된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러한 요구는 낡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새로움'의 가치에 대해 의심이 드는 것이 현 상황이다. 현대 문명을 이끈 가치 중 하나가 '새로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옛것을 답습하자는 말이 아니다. 답습은 다른 것을 상상하는 힘을 죽이기 때문이다. 새로움만의 추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전의 답습이 아닌 '예술-시'의 탈현대적인 가치가 발견되어야 한다. 이때 현대 문학의 고전들은 현대 문명의 근본적인 위기라는 현 상황에 맞게 재해석되고 현재의 시작詩作에 변형하여 재창조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의 시문학은 좀 위축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최소화되는 세상에서 시인들은 더욱 밀실에 들어가 우울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진단은 재작년부터 발표된 시들을 성실하게 읽고 내려야 하는데, 아직 이 작업을 하지 못한 필자로서는 잘못된 진단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를 통한 인간과 '생명-사물'과의 관계 회복의 추구를 시인들에게 촉구하고 싶다. 이러한 추구는 21세기 팬데믹 이후 위축되고 왜소하게 된 인간을 세계와 공존하는 확장적 존재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며 사람들이 팬데믹 이후 꾸려나갈 삶에 대해 사유하도록 이끌 것이다. (p.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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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파 MUNPA』2022-봄(63)호 <권두언> 에서

  * 이성혁/ 1967년 서울 출생, 2003년 대한매일신문 ⟪현)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저서『불꽃과 트임』『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서정시와 실재』『미래의 시를 향하여』『모더니티에 대항하는 역린』『사랑은 왜 가능한가』『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시, 사적, 역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