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강남주_문학이 평가절하되고 있다(발췌)/ 흥망이 유수하니 : 원천석

검지 정숙자 2022. 4. 4. 17:05

<이 계절의 언어> 中

 

    문학이 평가절하되고 있다(발췌)

 

    강남주 

 

 

  우리는 어쩌다가 문학이 시들어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신문의 신간소개나 서평란만 봐도 그렇다. 정치 문제, 사회문제, 취직관계 기술서적 등은 지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신간소개 난이 따로 있는 토요일인 오늘 아침 신문에서도 문학에 관계된 서평 같은 것은 깨알 같았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다.

  이를 반드시 나쁘다고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정치관, 변화가 무상한 사회현상을 독서를 통해 똑바로 이해하는 일, 이 취직난 속에서 일자리 찾기를 위한 노력, 국제사회 속에서 외국어 능력을 기르는 일도 다 중요하다. 입시를 목전에 둔 수험생들의 바른 길라잡이로서 제대로 된 인터넷 서점의 입시서적들은 효용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학이 소외되고, 예술이 외면당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은 슬픈 일이다. 왜 그런가? 문학이나 예술은 인간의 정신을 넉넉하게 해주고 인간심성을 순화시켜 사람의 가치를 높여준다. 그리고 좋은 감정과 그릇된 판단력도 길러주기 때문이다. 절벽 같은 현실에 자아가 꽉 막혔다고 느꼈을 때, 그런 감정을 정화(Catharsis)시켜 줄 수 있는 것으로서의 문학은 인문학의 앞자리에 서 있었음이 이를 말해 준다.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간탐구라는 말이 그래서 타당성을 얻는다.

 

    (······)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가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木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조선조 초기에 치악산에 들어가 농사를지었다는 원천석의 시다. 원천석은 고려 말 이방원의 스승이다. 이방원은 조선조 태종으로 왕위에 오른 뒤 원천석에게 벼슬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사양했다. 그리고 표표히 치악산으로 들어갔다. 고려 왕조의 멸망과 조선조의 탄생, 왕위찬탈을 둘러싼 살육과 부도덕성에 대한 좌절감을 그는 이와 같이 단지 세 줄의 시 한 편으로 표현했다. 이 시의 가치는 정치학 교과서를 압축한 것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심도 있게 정치의 요체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시일 수도 있지 않은가. (p. 8-9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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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인』 2022-봄(58)호 <이 계절의 언어> 에서 

  * 강남주(1939~)/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