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귀로 웃는 집/ 이경철

검지 정숙자 2022. 4. 9. 23:54

 

    귀로 웃는 집

 

    이경철

 

 

  "대학 때 미당未堂 선생이 주신 아호에 집 당자 붙여 근원近園이 써준 '이소당耳笑堂' 걸고 나니, 가가대소 누옥 한 칸이 확 넓어진다"*라고 했던 시인 그래 그 집서 마른 얼굴에 큰 귀로 마음 환히 웃게 다스리며 '이소당 시편' 연작도 쓰고 시집도 잘 펴내다 갔는데

 

  난 절집에 가면 그 당호 걸어놓고 싶다 이 전殿 저 각 귀 큰 부처 보살님들 웃고 계시니 북풍한설 몰아치는 벼랑 관세음觀世音보살님 꿋꿋이 서 그 큰 귀로 중생들의 원과 한 다 들어주고 계시니

 

  눈 코 입 귀 그리고 살갗 오감五感 세상 받아들이고 마음 그대로 드러내는 얼굴 그중 변방의 귀 있어 저 시퍼렇게 언 하늘 깊숙이 계절 오가는 소릴 듣고 온몸 짜르르 공감으로 감전시키거늘

 

  기분좋게 취기 오를 땐 배 두드리며 가가대소했는데 변방 시린 귓불까지 화기 돌아 마음 중심 치고 올랐는데 깨고 나면 여직도 춥고 허세인 나는 언제 이소당 한 채 지어 제 나이 제 얼굴값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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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우리들의 얼굴 찾기 3 『그의 얼굴』에서/ 2022. 3. 22. <청색종이> 펴냄

  * 이경철/ 2010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그리움 베리에이션』, 저서『현대시에 나타난 불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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