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자
김산
외할아버지는 고수였다. 북을 메고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니셨다. 새끼 무당 머리도 올려주고, 내로라하는 국무들과 풍어제로 조선 팔도 다 돌아다니셨다. 이인자는 그가 낳은 큰딸인데, 외할아버지가 북 치고 유랑할 때, 가계를 떠맡아 산과 들로 나물과 버섯을 캐고 돌아다녔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남산에서 논산으로 열 살 많은 엘리트 건달에게 스물둘에 시집을 보냈다.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 몸종처럼 들어가 고모 셋과 철부지 막냇삼촌까지 떠맡아 산과 들로 품앗이를 다녔다. 외할아버지는 오일장 저녁에 떨이로 내놓은 복어 네 마리를 드신 후, 거품을 물고 돌아가셨다. 이인자는 백일도 안 지난 아기를 등에 업고 흙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였다. 그때의 이인자의 측면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붉은 장작이 타오르는 가르마 사이로 푸른빛이 돌면서 먼 곳에서 들리는 둥둥 북소리. 나는 너무 무서워, 포대기 위에 얼굴을 묻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때마다 들리는 북소리. 지금까지 들리는 그 북소리. 둥둥 울지 마라, 아가야. 엄마는 고수의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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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우리들의 얼굴 찾기 3 『그의 얼굴』에서/ 2022. 3. 22. <청색종이> 펴냄
* 김산/ 2007년『시인세계』로 등단, 시집『키키』『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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