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광장의 얼굴/ 하린

검지 정숙자 2022. 4. 9. 23:34

 

    광장의 얼굴

 

    하린

 

 

  쓰는 순간

  안쪽의 얼굴과

  바깥쪽 얼굴이 갈라진다

  갈라진다는 건

  분명한 색깔을 갖는 일

  안쪽은 바깥을 수렴할 수 없고

  바깥은 안쪽을 탓할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은 또 하나의 가면

  오늘 보여준 안쪽의 표정이

  바깥에서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목소리의 연대가 아니라

  가면의 연대였는지도 모른다

  목소리를 가질 때

  얼굴은 탄생하고

  얼굴은 표정이 되고

  표정은 다시 힘이 되는데

  목소리가 사라지자 가면만 남는다

  물론 가면을 수령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1인 시위보다 천막 시위가

  천막 시위보다 깃발 시위가

  더 힘이 셀 것 같은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가장 힘이 센 건 1인 시위다

  끝까지 흩어지지 않고

  변방을 지킨다

  300일째 팻말을 목에 건

  하나뿐인 그의 젖은 마음

  오늘도 외유내강이다

  아니 국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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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우리들의 얼굴 찾기 3 『그의 얼굴』에서/ 2022. 3. 22. <청색종이> 펴냄

  * 하린/ 2008년『시인세계로 등단, 시집『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1초 동안의 긴 고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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