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친 눈
정숙자
하늘은 한 알의 눈이다. 밤에조차 감기지 않는다. 낮이나 밤이나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지켜보고 세며, 무한대로 기억한다. 결코 흘리지 않는다.
문득 저지른, 혹은 미리 짠 소행일지라도 처음부터 덜커덕 세상에 드러내지는 않는다. 기다린다.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염치를 되찾기를 본래의 순수를 회복하기를.
하늘은
인간보다
훨씬 자비롭다
∴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은 속담이 아니라 금언이다. 꼬리를 밟은 이 역시 아무개가 아닌 하늘이건만, 들킨 꼬리는 목격자를 일러 철천지원수다 창끝을 간다.
우리가 놓아준 민달팽이 한 마리, 물기 마른 지렁이를 애써 풀 섶에 옮겨준 일, 맥없는 약자에게 함부로 굴린 눈 등 하늘은 차곡차곡 엮어두고 종종 들추어본다.
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기란 쉽지 않으나, 두려운 줄만 알아도 그는 이미 지식인이며, 종교인이며, 현철이다. 하늘은 알은체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을 재정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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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21-겨울(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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