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니체 이후의 신

검지 정숙자 2021. 12. 30. 15:36

    니체 이후의 신

 

    정숙자

 

 

  이제, 아니 그 후로는

  누구도 권선징악을 책임지지 않는다

  거기 기댈 수도 책망할 수도 없다

 

  다만, 하늘은 말이 없고

  타자를 시켜 울게 할 뿐이다

  개울물 소리와 저   시냇물 소리,

  문득 새파래지는 한밤의 풀벌레 소리,

  가만히 귀 기울이면 못 알아들을 말도 아니다

 

  “슬픔도 참으니 참아진다

 

  대나무에도 이르지 않고   구름에도 얹지 않고   바람에도 부치지 않고   견디고, 견디고, 견디고, 견디다   해가 저물고, 밤이 깊고   그렇게 산을 넘으면   자신을 넘어버리면   멀리서 들녘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런 게 몇만 번이었던가

  평생을 사는 동안

  은발의 습격에도

 

  슬픔은 소진되지 않는 것이었으니!

  끝없이 솟아나고 솟구치고

 

  어디에, 그 많은   이 깊은   슬픔이 대기 중인 것인가?

 

  예술이란 혹자에게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대개의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것인데······

 

  세상과는 먼 독백 안에서, 니체는 왜 신을 삭제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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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OK 『세종문학』 2021-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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