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고유 시간

검지 정숙자 2022. 1. 6. 17:33

 

    고유 시간

 

    정숙자

 

 

  열셋, 그때, 나는 미래를 팔아 시를 샀다

 

  그것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장차 그것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도 모르고

  한 꼬투리의 의문을 품거나 영문도 모른 채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수면에 비친 하늘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러한 나는 한낱

  ‘라는 공간의 얼뜬 지느러미에 불과했으나

  파고波高의 율동에 끼어 쉴 새 없이 아가미를 여닫았다

  잠들 때조차 모자란 눈을 감지 못했다

 

  여타의 인내와 고뇌와 얼핏얼핏 스치는 황홀 따위를 조각조각 전신에 이어붙이며,

 

  언제였던가 섬 한가득 피 흐르던 밤, 나는··· 없는 발을 수초에 묻고 별들의 산란을 바라보았다. (저건 필시 달의 사유/ 부스러져나간 달의 육체와 정신일 거야) 헤아리고는 어둠의 기하학을 아스라이 이해하였다

 

  바다에는 때로 용이 오르고

  해적이 살고

  삼각지대 곳곳에 휘돌았지만, 그는 말려들지 않았다

 

  <미래를 팔았으니까>

  <미래는 이미 시의 소유였으니까>

 

  ‘미래의 길이와 넓이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그때로부터

  반세기를 넘어온 오늘에야 checking-되는

 

  일생!

  그래, 맞아, (숙명이었겠지만)

  잘했어. 그때 모두를 팔아 시를 샀던 건 잘했고말고 -_-  

 

   ----------------

  * 『다층』 2021-겨울(92)

'그룹명 > 나의 근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이 바라본 어느 시인  (0) 2022.02.17
이슬 프로젝트-55  (0) 2022.01.08
니체 이후의 신  (0) 2021.12.30
마주친 눈  (0) 2021.11.29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5  (0) 2021.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