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 시간
정숙자
열셋, 그때, 나는 미래를 팔아 시를 샀다
그것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장차 그것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도 모르고
한 꼬투리의 의문을 품거나 영문도 모른 채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수면에 비친 하늘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러한 나는 한낱
‘시’라는 공간의 얼뜬 지느러미에 불과했으나
파고波高의 율동에 끼어 쉴 새 없이 아가미를 여닫았다
잠들 때조차 모자란 눈을 감지 못했다
여타의 인내와 고뇌와 얼핏얼핏 스치는 황홀 따위를 조각조각 전신에 이어붙이며,
언제였던가 섬 한가득 피 흐르던 밤, 나는··· 없는 발을 수초에 묻고 별들의 산란을 바라보았다. (저건 필시 달의 사유/ 부스러져나간 달의 육체와 정신일 거야) 헤아리고는 어둠의 기하학을 아스라이 이해하였다
바다에는 때로 용龍이 오르고
해적이 살고
삼각지대 곳곳에 휘돌았지만, 그는 말려들지 않았다
<미래를 팔았으니까>
<미래는 이미 시의 소유였으니까>
‘미래’의 길이와 넓이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그때로부터
반세기를 넘어온 오늘에야 checking-되는
일생!
그래, 맞아, (숙명이었겠지만)
잘했어. 그때 모두를 팔아 시를 샀던 건 잘했고말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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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1-겨울(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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