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와 문학의 미래(발췌)
이성혁/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21세기 들어서 디스토피아 문학이나 영화가 성행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좀비 영화의 성행을 상상해보라. 디스토피아 문학이나 영화는, 가장 번창하고 있는 듯한 현재의 자본주의 문명의 실상을 뒤집어 까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을 물어뜯는 좀비들. 이들이 지금 경쟁 체재를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디스토피아 문학이나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 내장되어 있는 공포와 우리 삶의 이면을 본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의 상황은 문학이나 영화가 보여준 디스토피아가 현실화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선진국 미국에서 시신들이 집단 매장되고, 이탈리아에서는 환자의 배설물이 복도에 방치된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악할 만한 일들이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언제라도 현실화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역시 사람들이 화상으로만 접속하는 디스토피아(또는 기술이 최고도로 발전한 유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는)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디스토피아 문학과 영화는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디스토피아가 현실화된 현재에도 디스토피아 문학이 필요할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디스토피아 문학은 환상문학이나 SF 문학이 아닌 리얼리즘 문학이 되는 것 아닐까? 어쩌면 미래의 리얼리즘 문학은 환상문학을 이어받아야 할지 모른다. 그것은 환상문학이 보여주었던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실제로 내장되어 있는지 밝히는 문학일 것이다. 또한 그 문학은 디스토피아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 내부의 디스토피아성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파장이 어떠한 것인지 밝히는 문학이며 우리 사회와 문명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우리 삶이 어떤 디스토피아로 이끌리고 있는지 예상하는 문학이다. 이 문학 역시 리얼리즘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p.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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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인』 2021-1월(창간)호 <기획특집_시간과 상상>에서
* 이성혁/ 2003년 ⟪대한매일신문(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 등단, 저서 『불꽃과 트임』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 『서정시와 실재』 『미래의 시를 향하여』 『모더니티에 대항하는 역린』 『사랑은 왜 가능한가』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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