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운명의 경사傾斜
함성호/ 시인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피사의 왕 펠롭스의 아들 크뤼시포스에게 욕정을 품고 납치한 죄로 소년을 보호하는 신 아폴론에게 저주를 받는다. 왜냐하면 크뤼시포스가 원치 않았음에도 동성애 상대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왕위에 올라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라이오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는 생각지 않고, 아무리 기다려도 자식이 생기지 않자 델포이 신전으로 가서 신탁을 받는다. 그 신탁은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 어미를 범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라이오스는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그때부터 이오카스테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으나 어느 날 술에 취해 그만 신들이 펼친 운명의 그물에 걸려들고 만다. 라이오스는 신탁의 예언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치기에게 아들을 맹수가 우글거리는 들판에 버린다. 그 결과 라이오스는 자신의 운명을 들여다 본 죄로 자신도 모르게 그 운명이 정해준 길로 걸어 들어가, 아들 오이디푸스에게 죽는다. 또한 가정의 신 헤라는 아폴론의 저주를 피하려고 아들을 버린 라이오스를 응징하기 위해 스핑크스를 테베에 보낸다. 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면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와 조상들이 세운 나라 테베의 왕이 되면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할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산다. 결국 아폴론의 저주는 스핑크스라는 포석을 둔 헤라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신들이 짜 놓은 운명의 설계도에서 오이디푸스는 철저한 피해자다. 라이오스에게는 분명한 죄가 있었다. 신들은 라이오스를 응징하기 위해 잔인하게도 그 아들을 이용한다. 오이디푸스는 철저하게 신의 도구로 쓰였고, 이에 만족한 신들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에게 마침내 축복을 내린다. "그가 머물렀던 땅은 그 어느 곳이 되었건 복된 땅이 되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 모두 그 복으로 말미암아 복된 운명 속에서 삶을 누리게 된 것 소포클레스"이다.*
* 이 헬레니즘이 히브리즘과 만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라' 예수의 신화를 낳으며 기독교가 시작된다. 불교문화권에서는 이 대속이 신화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재한다. 밀교에서는 마을에 역병이나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그것을 치유하고 끝내기 위해 마을의 큰스님이 곡기를 끊고 스스로 미이라가 된다. 그럼으로 해서 승려 자신이 재액을 막는 부적이 되는 것이다. 이미 죽은 육신에 약품을 처리하여 미이라는 만드는 것이 아닌, 이 신기한 현상은 불교 문화권 곳곳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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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와사람』 2020-겨울호 <예술산책> 에서
* 함성호/ 1990년 『문학과사회』여름호에 시 발표, 1991년 『공간』건축평론 신인상, 시집『56억 7천만년의 고독』『너무 아름다운 병』등, 티베트 기행산문집『허무의 기록』, 만화비평집『만화당 인생』, 건축평론집『건축의 스트레스』『철학으로 읽는 옛집』등, 현재 건축실험집단 <E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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