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큰 바위 얼굴(발췌)/ 너새니얼 호손 : 이현주 옮김

검지 정숙자 2021. 1. 10. 02:55

 

 

    큰 바위 얼굴(발췌)

 

    너새니얼 호손/ 이현주 옮김

 

 

  그렇게 세계는 시인이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전에 보이지 않던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조물주가 스스로 만든 것들에 마지막 손길을 보태어 시인에게 그런 재능을 주었던 것이다. 시인이 나타나 그것을 해석하고 그렇게 완성할 때까지 신의 창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인이 인류 동포를 시의 소재로 삼았을 때에도 이런 것들 못지않게 고상하고 아름다운 효과가 나타났다. 인생의 속된 먼지에 찌든 남자와 여자들, 그들이 걷고 있는 길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시인의 눈길을 받으면 영광스럽게 빛났다. 그는 그들을 천사의 친족들로 엮어 놓는 위대한 황금 고리를 보여 주었고, 그들을 천사의 친족으로 만들어 준 숨겨진 하늘의 혈통을 드러냈다.

  실로 어떤 이들은 자연계의 온갖 아름다움과 위엄이 오직 시인의 공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확신으로,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런 자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두자. 그들은 본디 남을 우습게 여기는 성품을 지니고 태어난 자들로, 자연의 신이 모든 돼지들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빚어 놓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관하여 시인의 이상은 가장 진실한 진실이었다. (p. 64)

 

  시인이 대꾸했다. 

  "그것들에 하늘 가락이 담겨 있긴 하지요. 그 속에서 멀리 울리는 하늘 노래의 메아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니스트 선생, 내 삶은 내 생각에 일치되지 못했어요. 나는 큰 꿈을 꾸긴 했지만 그러나 결국 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나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빈약하고 천박한 현실에 묻혀 살았거든요. 터놓고 말씀드립니다만, 때로는 내 작품이 자연과 인간의 삶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일컬어지는 장엄함과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믿음이 나 자신에게 없었어요. 그러니 순수하게 선과 진실을 추구해 온 당신이 나한테서 거룩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시인이 슬픈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데, 눈물로 눈이 흐릿해졌다. 어니스트도 눈물이 맺혔다. (p. 64)

 

  어니스트가 입을 열어 자기 느낌과 생각을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자기의 생각을 알맞게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생각들은 그가 살아온 삶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진실하고 심오했다. 그 설교자의 말은 그냥 내뱉어지는 음성이 아니라 생명의 언어였다. 선한 행실과 거룩한 사랑이 그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순결하고 풍성한 진주알들이 그의 값진 한마디 안에 녹아 들어가 있었다.

  멀리 그러나 또렷하게, 지는 해의 황금빛을 받으며, 어니스트의 이마를 덮은 백발처럼 흰 안개에 싸인 큰 바위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장엄하면서 자비스러운 표정이 온 세상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p. 78)  

 

  바로 그 순간, 이제 막 말하려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동화된 어니스트의 얼굴에 장엄한 표정이 나타났는데, 그 자비스러움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야말로 바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러자 모두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그리고 깊은 통찰력을 지닌 시인의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마침내 예언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말을 마치자, 시인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언젠가는 자기보다 훌륭한 누군가가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은 모습을 띠고 홀연히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p.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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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편소설(그림책) 『큰 바위 얼굴』에서, 1판 1쇄 2013. 12. 25./ 1판 3쇄 2018. 3. 20. <두레아이들> 펴냄

 * 글쓴이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 60세)/ 미국의 소설가이며, 매사추세츠 주의 항구 도시 세일럼에서 태어났다.  작품으로 『주홍글씨』 『대리석의 목신상』 등, 단편소설집 『두 번 들은 이야기』 등

 * 옮긴이 이현주/ 관옥觀玉이라 불리고, '이아무개'라는 필명, 목사이자 시인, 동화 작가. 번역가이다. 동화책 『알게 뭐야』 『육촌 형』 등, 옮긴 책 『틱낫한 명상』 『바가바드기타』 등

 * 그린이 김근희/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 대학원 졸업, 그린 책 『민들레와 애벌레』 『겨레 전통 도감 살림살이』 등, 한국출판문화상, 미국학부모협외 도서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