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아버지를 남용한 상속인들/ 조재형

검지 정숙자 2021. 2. 4. 01:21

 

    아버지를 남용한 상속인들

 

    조재형/ 시인

 

 

  영달 씨 어머니는 대지주의 상속녀였다. 

  오 남매 중 맏이인 영달 씨를 빼고는 그 많은 땅을 지켜오는데 기여도가 별로 없다. 연로한 어머니가 사망할 무렵 허술해진 노친의 총기를 틈타 자식들은 하나둘 어머니의 땅을 빼먹었다. 어떤 자식은 증여라는 명목으로 해 먹고, 또 어떤 놈은 돈 한 푼 안 주고 버젓이 매매라는 명목으로 해 먹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무섭게 사달이 났다. 상속을 정리하던 중 어머니 살림이 생전에 요절난 것이 드러냤다. 결국 골육간에 분쟁으로 비화하였다.

  처음에는 형제들끼리 유류분을 찾기 위한 정도의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양측 간에 변호사가 개입하고 급기야 집안의 전면전으로 번졌다. 구순이 넘은 아버지까지 끌어들였다. 한 자식이 아버지를 공동 원고로 세우자 다른 자식은 아버지를 증인으로 세우며 맞섰다.

  아버지가 자식들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아들놈이건 딸년이건 자신들의 약점을 지우고 상대방의 허물을 드러내는 도구로 아버지를 써먹고 있다. 아버지의 씨를 받아 태어난 놈들이 아버지의 보호막이 되기는커녕 아버지를 남용하고 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아들 탓도 하지 않고 딸 탓도 하지 않는다. 원고 자식이 원하면 그 용도로 도장을 건네주고, 피고 자신이 원하면 그 용도로 도장을 또다시 건네주었다.

  소송은 뒤죽박죽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정상이 아니었다. 원고가 증인을 서고, 증인이 다시 원고 역할을 하는 희한한 소송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남긴 것은 재산이었으나 그 유산이 실탄과 흉기가 되어 골육상쟁을 치르고 있다. 형제들 간에 벌이는 전장에서, 형제들이 서로를 향해 겨눈 총상을 전신에 입은 건 아버지였다. 자식들의 욕망에 아버지의 부성애는 따귀를 얻어맞았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마치 돌과 나무처럼 여기는 게 분명했다. 상속 재산으로 인해 형제 사이의 간격은 멀어질 대로 멀어졌다. 자식들과 아버지 사이의 간격도 함께 벌어졌다. 원고의 변호인단은 사건이 어렵기는 하지만 자기를 믿고 따르면 이길 것이라고 장담하는 눈치였다. 자식들은 재판해본 경험이 많은 소송꾼처럼 민첩했다. 하지만 평생 농투성이인 아버지는 한 번도 재판 경험이 없으니 굼뜬 태도를 유지했다. 자식들은 번갈아 자기 쪽에 유리하게 아버지를 연출하려고 시도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불러 주는 대본대로 리허설을 따라 했다. 아버지는 법정에서 열연했으나 재산 앞에서 불을 켠 자식들 눈에 아버지의 연기는 충분하지 못했다.

  재판장이 알고 싶은 것은 아버지 가슴 속에 보관된 진실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자식들은 재산이 어떤 비율로 분할될지 판결이 궁금할 뿐이었다. 아버지로서는 재판장이나 상대 변호인이 묻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예, 라고 하는 게 가장 수월했다. 양측의 유도 신문이 기승을 부릴 만도 했다.

  그 와중에 한 자식이 아버지의 의사능력을 문제 삼아 법정후견인으로 자신을 선임해달라고 심판을 청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만일 법원이 신청을 인용하는 경우 원고와 증인으로서 자격이 모두 상실되는 것이었다. 아버지 앞으로 예치 중인 상당한 액면의 채권을 노리고, 아버지가 가진 최소한의 몫마저 박탈시키려는 시도였다. 아버지는 법적인 보호와 부양으로부터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몸뚱이밖에 없는 아버지는 거의 백지상태가 되었다. 손에 남아 있는 것은 노인당의 친지 몇과 있으나 마나한 취급을 받는 아버지 자신뿐이었다.

 

  아버지에게 얼만 남지 않은 시간이 그렇게 유린당하였다. 자식들은 한 줌도 안 되는 재산에 온통 자신들을 맡겨버리고, 자식들의 행각은 아버지의 모든 희생을 뒤덮어버렸다.

 

                                *

 

  늙은 어버이는 모든 게 꿈만 같다. 모두 한바탕 꿈을 꾸고 있다. 제 몫을 얻으려는 형제는 자매를 잃고, 그것을 포기하는 자매는 형제를 얻을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재물이 있는 곳에 자식들 마음이 있었다. 어버이가 먹을 것을 청할 때 그들은 신경안정제를 주었다. 어버이가 그리움에 목말라 할 때 무소식을 안겨 주고 가출하는 어버이를 지켜보던 그들은 수배 전단을 뿌렸다. 입술로는 어버이를 공경하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멀리 떠나 있었다. 천근만근 고독을 어버이 어깨에 옮겨놓고, 그것을 나르는 일에 그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였지만, 그들의 속은 불신과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침내 어버이의 병이 깊어지자 요양원으로 이송하면 그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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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문집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에서, 2021. 1. 11. <소울앤북> 펴냄

   * 조재형/ 전북 부안 출생, 2011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지문을 수배하다』 『누군가 나를 두리번거린다』, 검찰 수사관으로 일하다 문학에 대한 갈증으로 퇴직, 해가 뜨면 법무사로 일하고, 해가 지면 글을 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