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
UP
오직
나만이 읽을 수 있는
단 한 권의
책을 위하여
정숙자/ 시인
오늘은 2020년 12월 22일. 현재 15:17분을 지나고 있다. 아침부터, 아니 며칠 전부터 멋진 원고를 쓰기 위해 두뇌를 달궈보지만 여의치 않다. 문단 경력 30여 년에 이런 경험은 처음 일이다. 왜일까? 그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의 여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출입이 통제되는 일상생활의 마비와 그로 인한 경제환경의 위축, 이제 막 청장년기에 진입하는 세대들의 꿈과 욕망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불편/불안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일부 계층을 빼놓고는 하루하루가 편한 잠 이루기마저 힘들 정도다.
필자 역시 자영업에 위협받는 아들이 있어 전국 어머니들의 고통을 함께 짐 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지혜를 동원하여 형이상학적인 철학이나 문학적 문장으로 잉크를 소비한다면, 그게 곧 허식虛飾이나 작란作亂이 아닐까, 하여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민하며 함께 견디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언제 어디서도 잊지 못한다. 물리적 힘이 모자란 경우에는 빈손으로 올리는 기도나마 더욱 간절해진다. 필자의 나이가 되면 부모 자식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 솟는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는 단 한 권의 책이 들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제목의 시이자 소설이다. 일초일순一初一瞬의 삶이 기록되고 있으며, 이미 기록되었고, 또 빠짐없이 기록될 것이다. 그 내용을 완벽하게 읽고 간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독자 역시 나 외에는 없다. 자, 이 책을 읽어보아라! 어디 한번 살아보아라! 하고 신이 맡긴, 단 한 권의 책이 바로 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다. 고전 한 권을 독해하기도 쉽잖은 일인데, 그 뜻을 살아야만 한다면 거기 숨겨진 비바람이야 헤아려 뭣하겠는가.
요즘 들어 젊은 시절에 읽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의 「두자춘杜子春」이라는 단편이 자주 떠오른다. 주인공 ‘두자춘’은 부귀와 영화, 빈곤과 멸시, 포부와 좌절 등을 두루 견디고 겪어낸 인간의 전형이다. 그런데 그가 도달한 최후의 안식처는 ‘양지바른 기슭에 남새밭이 딸린 오두막 한 채’였다. 수많은 철학자, 문호가 남겨놓고 간 책들은 고통의 과정이 아닌, 행복을 찾아 나선 발자국이며 궤적이었으리라. 우리 또한 ‘오늘’이 있어 ‘내일’은 밝으리라 믿으며 옷깃 여미고 심호흡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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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술교육대학교 【HAPPY KOREATECH】 2021-1월 <권두언 칼럼>에서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열매보다 강한 잎』 등, 산문집 『행복음자리표』 『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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