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아기 뱀 한 마리/ 류세진

검지 정숙자 2021. 2. 26. 02:58

 

    아기 뱀 한 마리

 

    류세진/ 수필가

 

 

  온 대지를 태울듯이 달구던 불볕더위도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다가오자 조금 수그러든다. 쨍쨍 내리쬐던 열기가 아침 저녁의 서늘한 바람에 한풀 꺾인 듯하다. 그래, 어떤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할 때는 이 더위가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한데 누가 막으랴. 오고 가는 계절의 변화를.

  어제까지 호기롭게 여름을 달구던 매미들이 어느 날 뚝 하고 노래를 멈춘다. 누구 하나 뒤처짐이 없다. 그게 그들의 사는 방법일까. 우리가 미물이라 일컫는 작고 힘없는 저들. 과연 저들은 감정의 기복이 없을까. 그냥 하루아침에 죽어버리는 것일까. 기쁘고 슬픈 아무 감흥도 없이 짜인 순서에 따라 그 시간이 꽉 차면 성충이 되고 죽어라 짝을 부르다 또 그렇게 죽어가는 생명일까. 오늘이 있기까지의 그 긴 시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너무도 허무한 그 시간 때문에 그들에겐 애초에 감정 같은 건 없었는지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 있는 아들을 보고 처음 며칠은 먹이를 주고 안 돼 하지만 점차 날이 가면서 모두 그를 외면한다. 겉모습은 벌레로 변했지만 가슴과 머리는 사람 그대로인 그의 고통을 아무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가 벌레이므로. 그의 가족들은 온전히 자신들의 판단만으로 그를 내버려둔 채 떠나버린다. 그리하여 그를 죽게 만든다.

  우리 또한 우리들의 잣대로 저들을 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무릇 생명을 가진 생물이라면 크든 작든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는 것은 본능이리라. 그 순간의 느낌이라 할지라도. 슬픔과 무서움 안도의 감정이 없으랴. 단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이지 않을까. 그러면서 체념하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농작물을 심고 사람의 감정이 섞여들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면 더 싱싱하게 잘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아침에 체육관 트랙을 돌고 잠시 쉬려고 벤치로 가던 중 나무 아래 떨어져 있는 매미 한 마리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곱고 아름다운 날개를 그대로 접은 채 누워 있었다. 마치 땅 위에 내려앉은 듯한 자세 그대로였다. 분명 그도 어제까지 사랑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으리라. 아님 엄마로 살았거나. 물론 그 매미는 누구의 위해도 없이 자신의 순명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이 너무 가혹하여 내 마음이 조금 언짢다. 물론 세상 이치가 내 헤아릴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이루어졌다해도 그저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어쩔 수도 없는···.

  삶이란,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또 먹어야 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고 모순 덩어리다.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자리한 인간이란 동물. 사람은 요것조것 입맛을 따져가며 먹는다. 자신의 구미에 맞게. 그 조건을 위해서라면 잔인함도 무지함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고 한낱재미나 오락을 빌미로 저들에게 가하는 악행과 무자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단지 저들보다 조금 위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토요일마다 용두동으로 간다. 전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면 제기동 약령시장이고 그 앞에 자리한 슈퍼마켓을 지나간다. 올해는 유난히도 배추가 비쌌다. 하여 슈퍼마켓 가판대에 쌓아놓은 배추가 싱싱하고 좋아 보여 값이나 보자고 살피는데 거기서 일보는 듯한 두 남자가 배추 한 망을 마주 잡고 옆 공터로 간다. 내가 가는 뱡향이라 무슨 일인가 하고 보았더니 뜻밖에도 쏟아놓은 배추망 속에서 길이가 4~50㎝의 가느다란 아기 뱀 한 마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망 속에 갇혀 있다 밖으로 나오니 그 뱀은 살판이 난 듯 몸뚱이를 요동치며 어디론가 빠져나가려 몸부림쳤다. 두 사람은 뱀이 달아나지 못하게 발로 이리저리 막고 있었다.

  그때 그곳에 박스를 주워 모으는 한 남자가 오더니 가타부타 말도 없이 한 발을 들어 그 뱀을 냅다 밟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일어난 일이었다. 뱀을 지키던 두 사람은 갑자기 당한 일이라 어이가 없다는 듯 그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서야 그를 나무랐다.

  그들은 뱀을 어디다 놓아주어야 뱀도 사람도 안전할까를 의논 중이었는데 어이없게 죽였다고 했다. 그 아기 뱀은 말 안 듣는 악동처럼 길을 잘못 들었다가 비명횡사한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길을 잘못 들면 곳곳에서 위험에 부딪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인간의 잔인함에 넌더리를 친다. 그날 하루 종일 아침에 본 그 광경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뱀을 밟아 죽인 사람도 악인은 아닌지 모른다. 견해의 차이와 무지가 부른 실수인지 모른다.

  우리 옆에서 맴도는 죽음이라는 그림자. 아기 뱀은 죽어가면서 무서웠을까. 미련과 아쉬움을 느끼며 떠났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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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세이집 『왜 사랑이 아름다운지를 말하지 않는가』에서, 2021. 9. 10. <도훈> 펴냄

   * 류세진/ 2001년 『수필춘추』로 등단, 2006년 『스토리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 수필집··· 그리고 그 때가 그립다』, 육아일기 『또지, 바람과 구름과 구름과 새』그 외 공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