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유비무환/ 곽문연

검지 정숙자 2021. 1. 24. 02:27

 

    유비무환

 

    관문연/ 시인

 

 

  태풍경보가 내렸다. 전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에 설상가상으로 태풍까지 겹쳐왔다. 시시각각 전해오는 기상청 예보는 역대급 태풍이라 한다. 모처럼 한적한 해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간절히 소원한 나의 기대는 크게 비켜가지 않았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태풍은 내 방 유리창을 부수고 창밖으로 보이는 단단한 나무들을 할퀴고 쓰러트리며 지나갔다.

 

  나는 읽고 있던 『총균쇠』 책을 바람이 보이는 곳에 올려놓았다. 바람은 산발하여 천지를 휘두르며 지상의 모든 것을 할퀴고 쓰러트린다. 거실에 앉아 묵념에 든 나는 서서히 배가 아프고 침이 말았다. 시시각각 드세지는 바람 앞에 인간은 하나의 나약한 등불. 저 거대한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안에서 총균쇠 제2장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도 따라서 흔들린다.

 

  유비무환이란 했던가. 알게 모르게 닥쳐오는 역경과 고난 또한 바람이라 부르지 않는가. 그 속수무책의 바람을 바라보며 태풍 앞에 서 있는 이 재난 또한 곧 지나갈 것이라고 염력念力을 보냈다.

 

  요즈음 세기의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상황에서 프레퍼(prepper)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프레퍼란 지닌, 태풍, 폭발 등 극지적 자연재해로부터 전쟁 기아 패데믹 등 전 지구적 재난 등이 언젠가 닥쳐올 것이라 믿고 이를 준비하는 이들을 말한다.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프레퍼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이들이 하위문화를 향유하는 집단에서 벗어나 주류문화로 도약할 것이라 하니, 이는 곧 유비무환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삶은 늘 생로병사의 화두 속에 살아간다. 이 또한 역사 속에 묻혀 지나갈 것이다. 기쁨과 슬픔이 끊임없이 공존하는 불확실한 상황을 겪으면서 파편화된 나로부터 전체의 나로 굳건하게 승화시켜 나가는 자아성찰의 시간이야말로 이 혼돈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반석이며 유비무환의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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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들이 건네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바람이 분다 · 2』 에서

    * 2020. 12. 20. <문학의 집 · 서울/ 비매품>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