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영동천심월, 그늘 그리고 백남준(발췌)/ 이재복

검지 정숙자 2020. 9. 23. 17:34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 그늘 그리고 백남준(발췌)

        예술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이재복/ 문학평론가

 

 

  이러한 음양오행의 구조는 '역학' 다시 말하면 『주역周易』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우리의 경우에는 그것의 원리를 독자적으로 해석한 『정역正易』이 있는데, 이 저술은 후에 동학 사상의 형성에 중요한 근간을 제공한다. 특히 김항이 설파한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정역』십오일언 "先后天周回度數", "觀淡莫如水, 好德宜行仁, 影動天心月, 勸君尋此眞.")'은 최제우의 '지기론至氣論'으로 이어진다. 영동천심월은 '그늘(그림자)이 천심월에서 움직인다는 것'으로 여기에서의 핵심은 '움직임' 곧 '변화'이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의 뒤바뀜, 다시 말하면 선천의 16일이 후천의 초하루가 되는 것이 바로 영동천심월이다. '그늘이 천심월을 움직인다'를 김지하는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김지하, 『김지하 전집 3』, <실천문학사>, 2002, p.305)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때의 핵심 역시 '바꾼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심월이든 우주든 그것의 본질을 변화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이 우주가 기의 흐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천심월을 움직이는 지극한 기운(지기론)을 수운이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수운은 이 지극한 기운을 내발적인 차원과 외발적인 차원에서 동시에 제기한다. 그것이 바로 '내유신령 외유기화內有神靈 外有氣化'이다. 안으로 신령함이 있고, 밖으로 기화가 있다는 것은 나의 내발적인 신령함 혹은 신기와 밖, 다시 말하면 우주의 기의 흐름 사이의 조화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과 바깥이 둘이 아니라는 전제로부터 이 둘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기에서의 핵심은 천심월 혹은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지극한 기운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정역』에 있다. 천심월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그늘'이다. 『정역』에서의 그늘(그림자)은 '서구의 빛의 형이상학'과는 다른 '동양의 볕의 생리학'으로 그것은 '눈의 작은 이성'이라기보다는 '몸의 큰 이성(원동훈, 「니체와 '그늘'의 사유」 『니체연구』 제26집, P.273)이며. 결국 전자(이성)는 후자(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니체의 사유에 입각해서 보면 그늘은 결국 몸으로 수렴되는 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늘은 '몸이 생성하는 지극한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정역』과 수운의 논리대로라면 몸은 신령 혹은 신기를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기(신령)는 많은 요인들에 의해 억압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이 억압된 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그늘이다. 그런데 이 그늘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이 생성하는 지극한 기운이 그늘이라면 그것은 몸의 육화 같은 것이며, 여기에는 질적 도약을 위한 오랜 과정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이 지극한 기운으로서의 그늘로 서로 반대 되는 것의 일치, 역학의 원리로 말하면 음양의 조화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밝음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 건조함과 축축함, 높음과 낮음, 많음과 적음 등이 서로 대립相剋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낳게相生하는 그런 구조가 그늘을 만든다. 인간의 지극한 삶 역시 이런 구조를 드러낸다. 온갖 '인생의 신산고초辛酸苦楚'를 겪은 사람의 과정이 몸에 은폐되어 있다가 그것이 소리나 말, 몸짓을 통해 밖으로 표출될 때 '그늘'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늘은 단순한 감각이나 감성 차원의 미를 넘어 삶의 윤리성 차원까지 포괄하는 우리의 독특한 미학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삶과 미학의 일치를 지향하는 이런 세계는 우리의 시, 서, 화나 굿, 탈춤, 판소리, 사물놀이, 민요, 산조 등의 문화 예술 양식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그늘'은 그 척도를 재는 한 표상이다. (P.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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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여는세상』 2020-가을호 <특집_시와 불화>에서

   * 이재복/ 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저서 『몸』 『비만한 이성』 『한국문학과 몸의 시학』 『한국현대문학이 흐름과 전망』 『몸과 그늘의 미학『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