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불화, 서정시의 기본 조건(발췌)/ 송기한

검지 정숙자 2020. 9. 23. 22:12

 

 

    불화, 서정시의 기본 조건(발췌)

 

    송기한/ 문학평론가

 

 

  세계를 향한 도전의 방식이나 초월의 방식이 상이하더라도 그 저변에 깔려있는 주체의 성격이랄까 입장은 동일하다. 모두 세계를 향한 불화의 정서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문학 양식은 모두 이 불화에서 비롯된다. 현대 사회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동일성이 거부되는 공간이다. 아니 거부된다기보다는 애초에 선험적으로 불화가 전제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서정 시인은 단지 그것을 감각하고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시인마다 서정의 밀도들은 달리 나타날 수 있겠지만, 서정적 자아가 시도하는 서정의 동기들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리얼리즘의 영역이든 혹은 모더니즘의 영역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영원이라는 신은 근대 이후에 사라졌다. 지금 여기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일시성, 순간성의 세계일 뿐이다. 그것은 휘발적 속성을 갖고 있기에 언제든 다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자아가 불안한 것은 그러한 시간성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없어질 것이기에 자아는 스스로에 대해 중심을 잡고 정립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이 세상에 대한 동일한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들과의 유기적 조화 또한 불가능하게 만든다. 세상에 대한 자아의 불안이랄까 불화가 싹트는 것은 이런 환경 조건 때문이다. 그 불화가 서정적 글쓰기를 유발하고 촉진시킨다. 시인은 여기서 얻어진 서정의 정열을 기반으로 불화를 다스려보고자 한다. 그 초월을 향한 영원한 도정 그것이 곧 서정 시인의 임무, 서정적 글쓰기의 목적이다. (P.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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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여는세상』 2020-가을호 <특집_시와 불화>에서

   * 송기한/ 문학평론가, 대전대 교수,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저서 『정지용의 기의 세계』 『현대시의 정신과 미학』 『서정의 유토피아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