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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수_『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발췌, 셋)/ 근대지향성, 서정의 변혁, 반전통주의

검지 정숙자 2020. 4. 1. 03:01



    『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발췌, 셋)


       전해수



  ◈ '전통적 서정시'는 "한국적 서정성과 언어의식에 기반하여 창작된 근대 서정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최근 현대시 연구에서 폭넓게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이 용어는 특정한 유파나 경향성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향의 개별 시인이나 개별 작품을 거론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전통시의 경우는 "전통지향시'의 약어로도 쓰이지만, 시조 · 가사와 같은 고전 시가, 즉 전통적 서정 장르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전통시는 "미의식이나 세계인식이 전통지향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여 창작된 근대시"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통지향성'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 '근대지향성'의 개념이다. 김윤식은 문화수용적 맥락에서 '전통지향성'과 '근대지향성'을 구분하였는데,(김윤식, 『한국현대시론 비판』,일지사, 1986, 참조) 그는 후자를 서구의 외래사조, 특히 영미의 신고전주의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시의 영향을 받은 일련의 시운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p-15)



  ◈ 1950년대 전후 시단은 전통주의적 시 창작에 주력했던 문협 정통파 계열의 시와 주지적인 감각을 통해 일대 전환을 모색한 모더니즘시로 크게 대별된다. 주정적인 서정과 주지적 감각의 양립은 리듬의 시와 이미지의 시, 서정과 지성의 시, 재래적 서정시와 현대적 문명시의 대립으로도 규정할 수 있다. 전통시는 1920년대 김소월에서 1930년대 시문학파의 수수서정시로 이어지고, 청록파, 서정주에 의해 정점을 이루다가 1950년대를 맞이한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 등 문학 외적인 변화는 문학 내부의 양상에도 영향을 미쳐 전통시의 시적 전통과 권위는 후반기 동인들에 의해 도전받는다. 1950년대의 시는 새로운 문학 이념의 수립과 시창작의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모더니스트들은 구세대 시(전통시)의 주된 특징인 리리시즘, 운율, 감정의 중요성을 부정하고 모더니즘, 이미지, 지성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예컨대 김규동, 김경린, 최일수, 홍사중 등은 전통시가 현실에 대한 수동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개인의 생존 방식에 따른 집착을 보이고, 현실을 일탈한 채 자연관조의 세계, 목가적인 리리시즘, 감상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 가운데 이봉래는 기존의 전통시가 추구한 서정성이 개인적인 감정으로서의 영탄과 비애, 감상에 불과하다고 일갈하면서 "서정의 변혁"을 요구한다.(p-40)



  ◈ 조지훈과 마찬가지로 서정주의 시적 경향은 이 시기 매우 중요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1950년대의 서정주는 신라정신을 통해 전통적 의미를 재고했으며, 여타의 신진시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막대한 것이었다. 서정주는 『한국 시문학의 전통』(서정주, 「한국 시문학의 전통」, 《국어국문학보》1호, 동국대, 1958 참조)에서 한국 시정신의 전통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설명한다. 상대上代로부터 갑오경장(※고종 31년〓1874년 7월~1896년 2월까지 추진되었던 일련의 개혁운동: 블로그 주) 이전까지 이루어진 서구적 전통이 그것이다. 그는 전자의 경우로, 도교, 불교의 정신과 유교 정신을 포함시키고 후자의 것으로 주정주의적인 것과 주지주의적인 것을 다시 나누어 설명한다. 서정주에 따르면 신라의 향가는 도, 불교적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며, 고려와 조선의 시가는 유교적 정통을 잇는 것이다. 또한, 김소월과 이상화는 낭만주의의 흐름을, 김기림과 이상은 주지주의 흐름을 물려받고 있다./ 서정주는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을 '영통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시 전통을 종합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는 고유한 시적 전통을 유불선을 통합한 신라의 화랑도 혹은 풍류도의 정신에서 찾는다. 그러나 서정주의 신라정신은 조지훈의 시론이 비교적 이론적 토대를 제시하려 하였던 점과 비교할 때 비평적 논리성이 미약하였다. 다만 시작품의 실질적인 형상화를 꾀하여 우리 민족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전통성과 그 정신을 구체적인 시적 성취로 이루고 있다는 것이 조지훈의 영향과 변별되는 지점이다.(p-63)



  ◈ 선대의 시적 경향을 이어받고 있던 전통시의 경우는 전후 순수 서정시의 맥을 잇고 있었다. 문장파, 청록파의 문학적 기질을 계승, 발전하고자 한 김관식, 박재삼, 이동주, 이원섭, 구자운, 박용래 등이 이에 속한다. 실제로 이들은 조지훈의 『시의 원리』와 서정주의 시적 경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청록파로 대표되는 자연시, 서정주로 대표되는 생명시의 성격은 이러한 경향의 신진시인들에게는 문학적 규범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그런데 1950년대 시를 주도해온 모더니즘 성향과 전통주의 성향의 차이는 전통에 대한 재인식과 시적 본질의 자각을 촉구하는 시발점으로서 그 역할을 강조하거나,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였다. 모더니스트들은 과거(전통)와의 결별로 새로움의 시학을 창출하고자 기법과 정서의 변화를 기획하고 있었다. '후반기'란 명명도 1950년대 이후를 지칭하는 것으로 시적 변혁의 시작점을 당대이후러 삼고자 하는 의욕이 내재된 것이었다. 반면에,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 문학의 자율성에 대한 자각은 전통주의 시인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들은 과거의 가치 있는 유산을 계승, 발전하여 시의 심미적인 영역을 강화하고 전통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였다. 후반기 동인처럼 뚜렷한 유파를 결성하지는 않았지만 서정주를 중심으로 한 기성 시인들의 영향을 인정하고 이를 계승하려는 일군의 신진시인들이 활발한 시작 활동을 단행하고 있었다. (p_183)

  그러나 이러한 기존 방식에 대한 부정의 목소리는 전통 폐기의 기치와 함께 시의 본질적 요소와 논리를 재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더욱 격앙되었으며, 맹목적인 서구 추수의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전통의 부정적인 면은 더욱 표면화되고,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해명은 유보된 채 가치의 혼돈 상태만을 초래했다.(이 같은 전통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말에 이르면 전통이 고정된 불변의 가치라는 사고에서 크게 전환한다. 이 시기의 전통에 대한 논의는 계승의 실상을 긍정적 계승과 부정적 계승으로 이원화하여 살핀다거나, 보편성과 특수성의 양면을 아우르려고 하거나 혹은 지속과 젼화라는 역동적 측면을 고려하는 것으로 그 방법론이 한층 정치해졌다는 점이 진일보한 성과로 보인다. 김대행, 「현대시 전통론을 위하여」, 김은전 외『한국현대시사의 쟁점』, p.49 참조) 미하일 함부르거가 언급한 바 있는 "전쟁이 문학에 끼치는 영향"은 이 시기를 전후 체험이 만연한 시기이며, 한 시대를 철저한 정치적인 시기로 이해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함부르거에 의하면, 전쟁 이후에는 더 이상 순수문학이 존재할 여지가 없어진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순수'라는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것이며, 지배 이데올로기의 실현을 도와주는 또 다른 정치이념의 표현으로 규정된다./ 순수문학의 정표旌表인 전통시는 이러한 배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전후 복구기의 상황과 근대화를 둘러싼 문화적 구도는 전통주의에 대한 폄훼와 문학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논란을 가져왔다. 이들의 의식에는 낡은 것이 전통이며 새로운 것이 근대라는 고착된 가치관이 만연하여 전통은 한갓 고고학적인 유물 차원의 것에 불과하며, 전통의 극복만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반전통주의가 뿌리를 내렸다.(p.183-184)



  ◈ 이처럼, 1950년대 시문학사에서 김관식, 박재삼, 이동주 등의 시세계는 선대先代 시인인 김소월, 서정주, 조지훈 등의 전통주의 시인들이 내장하고 있는 특성 가운데 언어의식과 민족적 정체성, 전통적 자연관의 영향을 입고 있었으며, 한시, 민요, 판소리 등 전통적 문학 양식을 두루 수용하는 한편, 이를 재변용, 계승하여 각기 다른 독창적인 시적 영역을 개척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통주의에 대한 가치와 정서, 율격, 소재 및 친밀한 시적 대상을 시화하여 민족 공동의 서정을 살려내었으며, 이러한 고전 정서와 전통적 가락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전통주의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케 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세 시인의 시적 시적 성향은 매우 변별적이면서도 동질의 사유체계를 지향하는 것이며, 전후 전통주의의 주도적인 흐름을 생성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제 자연시나 전원시, 산수시로 줄곧 이해되어온 전통시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개념 규정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복고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1950년대 시의 전통주의는 서구추수적인 시적 성향에 대한 반성적 입장을 표명하면서 '전통적' 혹은 '한국적' 의미의 재성찰을 촉구한다. 우리의 문학사는 종래의 근대에 대한 맹신에서 방향전환하여 문학사 전반에 내장된 주체적이면서 발전적인 전통주의에 대한 재검토를 수행할 때가 된 것이다. 향후 보다 분석적이고 다양한 성과물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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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해수『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에서/ 2006. 12. 12. <역락> 펴냄

  * 전해수全海綬 (본명: 전영주)/ 1968년 출생, 문학평론가,  문학박사(동국대학교), 현재 동국대학교 한국어교육센터 및 수원여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