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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봉구_『사람은 모두 예술가다』(발췌, 셋)/ 칸트, 동아시아, 서구

검지 정숙자 2020. 3. 19. 02:57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발췌, 셋)

      C R I T I C I S M


     황봉구




  ▣ 예술에서 천재론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하여 주장한 사람은 칸트다. 예술은 기예技藝다. 예술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그 기술에는 사람들이 준수하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천재는 어떠한 규칙도 요구되지 않는 특정한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천재는 또한 미감적 이념(Idee)을 생각하고 찾아내는 것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 사람들은 개념(Begriff)을 갖는다.그러한 개념은 상상력과 관계된다. 이러한 개념의 상상력은 그 원본적인 표상을 지니는데 그것이 바로 미감적 이념이다. 이러한 이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천재의 상상력과 지성이다. 이는 가르치거나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칸트는 지금껏 예술론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창의성(creativity)과 독창성(originality)을 주창한다. 그것들은 천재가 지닌 본원적 속성이기도 하다. 기존의 어떠한 규칙도 해당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이는 당연히 원본성 또는 독창성과 직결된다. 새롭다는 것은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보여 주지 않은 그런 것이다. 굳이 말한다면 천재(genius)는 그 본래의 뜻처럼 어떤 수호신에 의해 부여된 것이기도 하다. 칸트에게 예술은 이렇게 신이 허용한 대로 새롭게 발견한 규칙을 갖고 신 또는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는 플라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더 극단화시키고 있다.


  이데아는 오직 객관에 몰입해 버린 순수 관조에 의해서만 파악된다. 그리고 '전재'의 본질은 바로 그러한 월등한 관조의 능력에 있다. 그런데 관조는 자신과 그의 관계에 대해 망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천재성이란 바로 가장 완전한 '객관성', 즉 자기 자신 곧 의지로 향하는 정신의 주관적 방향과는 다른 정신의 객관적 방향이다. 따라서 천재성이란 순전히 직관적으로 행동하고 직관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며, 본래 의지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식을 이러한 봉사로부터 떼어놓는 능력, 즉 자기의 관심, 의욕, 목적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자신을 한순간 완전히 포기하고 순수 인식 주관으로서 분명한 세계의 눈이 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영속적이며, 또 필요한 만큼 사려하는 것으로서 파악된 것이 예술로서 재현된다(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권기철 역, 동서문화사, 1978.p.238.)./ (p. 28-29)



  ▣ 동아시아에서 유가의 전통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한다. 사실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자 한다. 조선 후기에 실학자들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은 정치화된 성리학의 가상적이고 허구적인 면에서 탈피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도 역시 근본적으로 유가의 그늘에 머무른다. 대동사회大同社會와 같은 이상향을 추구하는 유가의 정치적인 목적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예술의 역사를 논하려면 『논어』를 배제할 수 없다. 고대에서 공자만큼 시와 음악에 정통하고 나름대로 가치 평가의 기준을 역설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그의 예악론禮樂論이다. 예와 악은 동전의 양면이다. 『예기禮記』「악기樂記」에 보이듯, 예는 절과 서이며 구별과 차이다. 악은 화와 동이다. 예는 다름을 인식하고 절제하며 서로 공경하게 만든다.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인간들이지만 서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함이다. 악은 화를 통해 동일함을 자각하고 서로 친하고 어울리며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완성을 통해 이상적인 정치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대표적인 그의 강령이다./ (p. 47)


 

  서구의 사유는 전통적으로 실재 또는 리얼리티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풀라톤의 이데아(Idea)에서 비롯되고, 헤브라이즘의 절대적 신인 하나님에도 근거를 둔다. 이데아나 신은 진정한 실재이며 본체이다. 합해서 실체(Substance or Reality)다.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 만물로서 우리 앞에 드러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가상假像에 불과하다. 플라톤은 동굴의 세계로 이를 비유했다. 데카르트는 근내적 사유의 단초를 열었다. 정신과 물질을 대립시켜 이원화하고 정신을 실체로 간주했다.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을 동격화하고 이를 실체로 여겼다. 헤겔에게서 정신(Geist)은 전체가 된다. 그것은 실체이며 본체이다. 시인들을 포함하여 서구의 모든 예술가들은 이러한 사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실체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을 한다. 모든 예술 사조는 진정한 실체 또는 진리를 찾으려는 여러 가지 노력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동아시아에서의 사유는 '하나'를 기초로 한다. 그 하나는 도나 태극일 수 있고, 또는 혼돈일 수도 있다. 그 하나의 속성은 덩어리이며 그 본질은 자연이다. 모든 사물은 그것 자체로 이미 실체로서 궁극적 실재인 하나와 동격인 또 하나의 실체다. 그것은 동일성의 존재가 아니라 동격의 존재이며, 그것은 개체 생명체로서 비동일성을 지닌다. 개체 하나는 그것 자체로 온전하고 독립적이며 그것 자체로 원인이다. 우주 만물은 개개가 생명체로 비동일성을 갖지만 동시에 본생으로서, 그것은 우주의 본원이며 하나인 본생과 동격이다./ (p.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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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봉구 CRITICISM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에서/ 2020. 2. 20. <파란> 펴냄

 * 황봉구/ 1948년 경기도 장단 출생, 시집『새끼 붕어가 죽은 어느 추운 날』『넘나드는 사잇길에서』등, 짧은 산문집『당신은 하늘에 소리를 지르고 싶다』, 여행기『아름다운 중국을 찾아서』『명나라 뒷골목 60일간 헤매기』, 음악 산문집『태초에 음악이 있었다』『소리의 늪』, 회화 산문집『그림의 숲』, 예술철학 에세이『생명의 정신과 예술』(1.2.3권), 산문집『바람의 그림자』등